“십여 개 자격증으로 공예전문가 됐죠”

취미로 시작한 공예, 이젠 전문가 ‘우뚝’
내 아이 위해 배운 미술심리, 강사 나서

 
‘시작은 미약했으나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종교적 가르침이 있지만 미약함에서 창대함까지 가기 위해선 수많은 도전과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때문에 소위 ‘성공’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사람들 뒤에 보이지 않는 눈물과 시련, 고통과 인내가 숨겨져 있으리라는 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서울 멋쟁이 아가씨, 팽성에 ‘둥지’
“결혼하기 전까지는 ‘겔랑’이라는 수입 화장품회사에 다녔고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파견근무를 했죠. 좋은 직장이어서 결혼 후에도 다니고 싶었는데 영종도로 발령을 받았을 때 둘째를 가져서 아쉽게 그만둬야 했어요. 첫째 아이를 가졌을 때부터 시댁인 팽성에서 인천까지 출퇴근 했는데 힘이 들어서인지 하혈을 계속해서 친정아빠가 5분대기조로 주변을 맴돌며 늘 노심초사 하셨거든요”
평택 신한고등학교 인근에서 ‘홍’s 패밀리공방’을 운영하고 있는 홍기주(38) 원장은 서울에서 평택으로 이사를 온 뒤 악착같이 서울에 있는 직장에 다니던 당시 힘들었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임산부의 몸으로 팽성에서 인천까지 매일 기차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출퇴근 했다는 이야기는 비록 이전까지 그녀를 잘 모르는 사람이었음에도 ‘참 쉽지 않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큰 아이를 할머니 손에 맡기고 직장에 다니다 보니 아이에게 정을 많이 주지 못했던 게 늘 마음에 걸렸어요. 그래서 둘째는 내 손으로 키우며 정을 많이 줘야겠다는 생각도 컸구요. 그런데 직장생활을 해서인지 아이를 키우는 동안 짬나는 시간을 그냥 보내기가 너무 아깝더라구요. 그래서 그땐 한식과 양식 요리사 자격증을 따고 집에서 요리하는 과정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는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죠”
현재 고등학교 1학년 딸과 중학교 1학년 아들을 둔 홍기주 원장은 막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뉴코아문화센터에서 공예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취미에서 시작해서 강사까지 도전
“처음엔 시간이 아까워 취미로 해보자 했었는데 이왕 하는 거 자격증을 따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하나씩 방과후지도사자격증이나 클레이 자격증, 비즈공예 자격증, 냅킨공예, 예쁜 글씨, 풍선아트 자격증 등을 따기 시작했죠. 그런데 돈도 못 버는 주부가 자격증 따는 데만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집에서 배우고 싶어 하는 엄마들을 대상으로 조금씩 가르쳐주며 수업을 하기 시작했죠”
홍기주 원장은 10개의 공예 관련 자격증과 요리나 미술심리 등의 자격증도 갖추고 있다. 그녀가 가진 다양한 자격증은 교육을 위한 다양한 재료로 활용된다. 가죽공예, 종이공예 등 많은 분야에서 교육이 가능하지만 요즘은 특히 감성글씨라고 불리는 캘리그라피가 유행하고 있다고.
“많은 공예 중에서도 요즘은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이 유행하면서 그 글씨체인 캘리그라피가 한참 유행하고 있어요. 평택에도 이제 막 알려지기 시작했구요. POP가 조금은 틀에 박힌 글씨라면 캘리그라피는 자신만의 감성에 따라 변화가 다양한 글씨이기 때문에 개인의 성향이 잘 드러나는 느낌 좋은 글씨라고나 할까요. 요즘은 캘리그라피 뿐만 아니라 미술심리 쪽으로도 강의를 나가고 있어요”
홍기주 원장은 학교에 방과후수업 특강을 나가면서 점차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이 적성에 맞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됐다고 말한다. 결혼 11년 만에 시댁에서 분가를 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홈스쿨을 시작하고 2010년에는 직접 운영하는 공방도 문을 열었다.

아이들에게 당당한 엄마 되고 싶어
“처음에는 사춘기를 힘들게 보내는 제 아이들의 심리를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미술심리를 배우기 시작했죠. 사춘기 아이들의 심리를 알아서 말 한마디라도 도움이 되도록 해주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배우니까 제 심리가 먼저 치유되더라구요. 물론 아이들을 이해하는데도 많은 도움이 됐구요”
홍기주 원장은 미술심리를 배운 후 아이들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힘들게 일과 가정을 병행해야 했던 자신의 심리까지 들여다보는 여유를 갖게 됐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렇게 얻게 된 미술심리 자격증으로 지금은 지역아동센터에 있는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가정을 가진 여성이라도 누구의 엄마나 며느리, 아내가 아닌 내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이 필요한데 저를 그런 사람으로 살 수 있도록 곁에서 도와준 사람이 바로 남편과 아이들이에요. 저 역시 만능은 아니지만 제 일이 좋은 만큼 주부로서도 매일 가족들을 위한 식사준비는 꼭 해놓고 다니려고 노력해요”
공방을 운영하고 문화센터나 학교, 복지관 등에 출강하며 주부로 사회인으로 누구보다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는 홍기주 원장, 대한민국 모든 직장을 가진 주부들이 느끼는 어려운 점을 자신도 모두 느끼고는 있지만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동안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진정으로 알게 됐다는 그녀는 앞으로도 계속 아이들에게 당당한 엄마로 살아가고 싶다며 활짝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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