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소통,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

철없이 산다면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져
그동안 해온 일들 종합해 후학 양성 하고파

 
세상은 나와 타자의 관계맺음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그 관계들과 소통한 뒤라야 더 많은 것을 품을 수 있다. 자연과 세상 속에서 유유자적하게 노닌다는 뜻으로 장자가 추구했던 ‘소요유(逍遙遊)’ 역시 다른 이들과의 관계와 소통 속에서 많은 것을 품을 수 있게 된 이후라야 가능한 일이다. 

미군·지역사회 연결하는 ‘공보관’
“부내 내에서 공보관의 역할은 대외협력·로컬미디어 상대·기사 작성이나 정보수집·기록물 작성 등의 분야가 있어요. 부내 내부와 지역사회를 소통하게 하고 화합을 꾀하는 대외협력이 제가 담당하고 있는 분야죠. 1981년 10월 13일 아르바이트 학생 신분으로 처음 송탄 K-55 미군부대에 발을 들여놓았으니 미군부내 내에서 생활한지도 벌써 33년이 되었네요”
팽성읍 K-6 캠프험프리스수비대 유범동(58) 공보관은 스물여섯 살에 처음 학비를 벌기 위해 미군부대에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그는 처음 미군부대에서의 생활이 어땠느냐는 질문에 우편물관리 아르바이트부터 판매사원·하우징오피스까지 다양한 분야의 직업들을 거쳤던 과거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보다 못하고 좋아하는 건 즐기는 것만 못하다는 말도 있잖아요. 많은 직업들 중에서도 20여 년간 몸담았던 공보관은 제게 딱 맞는 직업이었어요. 그리고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던 만큼 33년이라는 시간을 참 즐기며 살았죠. 이제 정년이 고작 2년 정도 남았지만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 많네요”
어려서부터 외교관이 되고 싶었던 유범동 공보관은 학창시절부터 영어공부라면 어떤 과목보다 파고들어 배우고 익혔다. 그리고 그때의 노력으로 얻은 실력은 현재 미군부대 공보관으로 일하며 함께 교감하고 지역과의 소통을 꾀하는데서 빛을 발하고 있다.

관계·소통으로 하고픈 일 많아
“미군들 중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있어서 때론 상처받고 때론 힘든 일도 있어요. 그럴 때 그들과의 관계 회복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언제나 진솔한 소통이었죠. 소통의 중요성을 몸으로 깨닫게 된 거예요. 얼마 전에는 평택시가 운영하는 블로그 기자단에 신청해 선정됐어요. 평택에 관한 이야기를 영어로 번역해서 미군들이 평택을 더 잘 알 수 있도록 SNS로 소통하고 싶었거든요. 몇 년 후 퇴임하게 되면 제가 터득한 관계와 소통의 노하우들을 젊은이들에게도 전하고 싶어요”
유범동 공보관은 10여 년 전부터 남서울대학교 학생들에게 영어회화를 가르치고 대학원에서 유통마케팅 분야 박사과정을 밟는 등 직장인·교수·학생의 삶을 동시에 살고 있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만큼 바쁜 하루하루지만 시간을 쪼개서 평생을 함께 해온 영어공부 노하우를 정리해 조만간 책으로도 펴낼 생각이다. 또한 현재 공부하고 있는 유통마케팅으로 지역 상인들과 유통업자들의 교육은 물론 연구소를 만들어 지역발전을 위해 일할 생각이라고.
“상처는 사람에게서 받게 되지만 그 상처를 치유하는 것 역시 사람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생각해요. 힘들어도 관계 속에서 위로받으며 함께 성장해야죠. 그런 맥락에서 볼 때 전 부대 내에서나 부대 밖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소통할 수 있으니 참 좋은 직업을 가진 셈이예요. 미국과 우리나라, 그중에서도 내가 살고 있는 평택지역과 연계하고 소통하며 안보를 책임지는 역할도 하니 보람도 크구요”
그는 3년 전부터는 부대 내 각 부서 사람들을 모집해 ‘해바시’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행복한 밥상 식구들’ 앞 글자를 따서 만든 ‘해바시’는 현재 2기까지 결성돼 함께 이야기도 나누고 밥도 먹는다. 이 모든 것이 타인을 위해 일부러 시간을 내어주지 않으면 소통할 수 없다는 유범동 공보관의 평소 소신이 접목된 결과다.

‘우보당 벽안재’에서 휴식 같은 삶
“살아있는 동안 끝까지 철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철들면 나이를 생각하게 되고 그러면 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아지거든요. 늦게 공부를 시작한 것도 철없이 산다고 볼 수 있지만 전 지금이 행복해요. 끊임없이 배우고 학생들을 가르치며 함께 성장해가는 삶이 참 좋거든요”
유범동 공보관은 요즘 텃밭을 가꾸는 재미에 푹 빠졌다. 그가 주말마다 찾는 농장 ‘우보당 벽안재’에서 만나는 자연도 요즘 그가 가장 소통하고 싶은 대상이기 때문이다. 마음을 주는 만큼 마음을 열어 보이는 자연에서 아내와 함께 과실나무와 채소를 키우고 결실의 기쁨을 얻는 것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이라고.
“매일 돌볼 수 없어 바닥으로 떨어지는 오디를 받기 위해 나무 밑에 길게 해먹도 설치했어요. ‘우보당 벽안재’는 느리게 천천히 걷는다는 뜻과 부처님의 혜안을 갖는다는 뜻을 갖고 있죠. 이곳에서 천천히 자연도 둘러보고 새싹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한 없이 맑아지는 느낌이 들어요”
평생을 부대 내 외교관으로 근무하며 소통과 관계의 중요성을 몸으로 깨닫게 됐다는 유범동 공보관, 아직 해야 할 일이 산재해 있는데 나이를 생각하면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는 그는 영원히 철들지 않고 살아갈 거라며 큰 소리로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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