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 내 마음 뿌듯하니 좋은 거죠”

외식비·담배 값 아껴 아이들 학업 도와
20여 단체 봉사활동, 이젠 몸에 익숙해져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서로 연결돼 있다. 그래서 나 혼자만 따로 행복해지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고 말한 달라이 라마의 이야기는 옳다.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온 국민이 침울했던 것만으로도 이런 사실은 바로 증명된다. 너와 더불어 내가 행복해지는 일, 그것은 어쩌면 타인에게 내 마음을 마음을 나눠주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건 아닐까.

월급의 반 쪼개 어려운 학생 도와
“제가 어릴 때는 식구들이 밥 한 끼 먹는 일도 어려워서 중학교도 1년밖에 못 다녔어요. 15살 때부터 공장도 다니고 목장에서 소똥도 치우고, 그릇가게 점원으로도 일하며 정말 힘들게 10대 시절을 보냈죠. 스무 살 무렵에는 문득 나처럼 돈이 없어 공부 못하는 아이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라디오 방송에 내 월급의 반을 도와줄 테니 필요한 사람은 연락 달라는 사연을 보냈고 실제로 한동안 경남 진주에 사는 학생을 돕기도 했죠”
송월타올 평택점을 운영하며 20여개 봉사단체에서 왕성하게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오희홍(58) 대표는 9살에 부모를 잃고 힘들게 살았던 지난날들을 이야기하며 잠시 말을 멈춘다. 그는 자신이 못해본 학업에 대한 꿈을 자신처럼 형편이 어려운 학생을 돕는 것으로 대신하며 힘든 청년시절을 보냈다.
“전 막내였지만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며 자랐어요. 비록 부모도 없이 아침에는 보리밥, 점심에는 고구마, 저녁은 거의 굶는 날들이었지만 형제들 의리는 참 좋았죠. 그래서인지 어려서부터 엄마를 대신해 저를 돌봐주신 누님이 식물인간으로 3년을 고생하다 돌아가셨을 때는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날 정도로 마음이 많이 힘들었어요”
오희홍 대표에게는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삶, 자신과 인연이 닿은 사람들에게 정성을 다하는 삶이 최고의 삶이었다. 때문에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던 장인어른을 이후 20여 년 동안 모시는 일도 그에게는 어쩌면 선택사항이 아닌 당연한 일이었다.

담배와 외식 끊어 급식비 지원
“어느 날 장인어른을 모시고 외식을 하러 갔는데 그때 쓸데없는 곳에 돈 쓴다고 어찌나 혼났던지, 그 일 이후로는 지금까지 절대 외식은 안 해요. 장인어른은 외식비가 아까워 야단치신 거지만 덕분에 전 그 이후로 외식비를 아끼면 어렵게 사는 아이들을 도울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됐죠. 정말 돈이 없을 때는 담배도 끊고 그 돈으로 아이들을 돕곤 했으니까요”
오희홍 대표는 행사가 있을 때 먹게 되는 뷔페음식이 자신에게는 가장 사치스러운 음식이라고 말한다.  6만 원 정도만 있으면 한 아이의 한 달 급식비가 해결된다는 생각을 하면 큰돈을 쓰면서 외식을 하는 건 양심의 가책을 받는 일이어서 결코 쉽지 않았다.
“스물한 살 때부터 후지필름 회사에 다녔는데 그때의 인연으로 지금도 필름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필름을 갖다주곤 해요. 수요도 없고 먼 곳까지 필름을 갖다 주려면 기름 값도 안 나오지만 한 사람이라도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끝까지 필름을 대주겠다는 내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어서 지금도 꾸준히 하고 있죠”
오희홍 대표는 평택에 자리 잡은 뒤 주변 권유로 상인들이 모이는 모임에도 가고 BBS 등 봉사단체에 가입해 본격적으로 봉사하는 삶을 살기 시작했다. 환경연합에도 속해 활동했고 시민경찰도 초창기 멤버로 꾸준히 활동하며 봉사하는 삶을 살았다. 그러다보니 경찰청장 표창을 비롯해 수많은 상들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성실하고 정직한 삶, 평생의 가치관
“시민경찰 평택지구대장은 딸의 적극적인 권유로 하게 됐어요. 딸아이는 지금 경찰시험 준비를 하고 있는데 아빠의 모습을 보고 배우고 싶다고 하더라구요. 아내는 제가 봉사하는 걸 적극 권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말리거나 하진 않아요. 그것만 해도 아내에게 정말 고맙죠. 만일 아내가 싫어했다면 결코 마음 편히 봉사할 수 없었을 테니까요”
오희홍 대표는 현재 20여개 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평생을 해온 것이라 이젠 오래입어 편안해진 옷처럼 몸에 익숙하다. 자신에게 쓰는 돈은 아까워도 어려운 사람을 위해 쓰는 건 아깝지 않다는 오희홍 대표는 가끔 등산을 가게 되면 맨손으로도 쓰레기를 주워 집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내가 조금 몸을 움직이면 여러 사람이 편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지나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업이야 먹고살기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이지만 그외에 할 줄 아는 건 봉사와 등산밖엔 없어요. 그냥 정직하게 양심껏 살아야 겠다는 생각은 해요. 아이들에게도 특별히 봉사를 가르치거나 하진 않지만 제가 하는 걸 봐서 그런지 남을 배려하고 봉사하는 삶에 가치를 두는 걸 보면 이게 바로 교육이구나 싶기도 하구요”
원평동주민자치위원회 축제팀장을 맡아 올해 또 한 번 성대한 ‘원평동갈대축제’를 준비하고 있다는 오희홍 대표, 강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불의에 굽히거나 하진 않는다며 조용히 미소 짓는 오희홍 대표는 정말 강한 것은 부드러움에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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