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집배원, 남자 틈에서 당당히 일해요”

하루 우편물 1500여개, 택배물품 50개 배송
결근 한번 없이 14년 오토바이 무사고 운전

 
이제 세상 속에서 남성 고유의 영역은 없어진 것 같다. 예전 남성의 전유물 이라 생각했던 직업들 속에도 어느새 여성들이 속속 진출해 있기 때문이다.

경력 단절여성, 세상 속으로
“2000년도에 아르바이트생으로 우체국에 입사했어요. 계약직 1년 4개월을 거쳐 2004년에 정식 직원이 되었으니까 이 일을 시작한지도 벌써 15년이 되어가네요. 하루하루 바쁘게 지내다 보니 그 긴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기억도 안나요. 자전거도 못 타던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오토바이에 짐을 하나 가득 싣고도 까딱없이 온 시내를 돌아다니니 시간이 많이 흐르긴 흘렀네요”
평택우체국에서 우정주무관으로 일하는 박길님(49) 씨는 요즘 같은 선거철에는 주말에도 늘 비상근무를 해야 한다며 웃는다. 이야기 도중 문득문득 엿보이는 환하고 고운 미소는 그녀가 천생 여자임을 증명하고 있어 오토바이에 하나 가득 우편물과 택배를 싣고 배송하는 모습이 잘 연상되지 않는다.
“결혼 후 8년 동안을 전업주부로 살다보니 서른일곱의 나이에 세상 속으로 나온다는 게 왠지 자신이 없었어요. 그런데 남편이 중장비 사업을 하다 부도를 내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직장을 가져야 했죠. 집에 빚을 독촉하는 우편물이 많아졌는데 당시 저희 집에 우편물을 가져다주던 여자 집배원이 제게 이 일을 해보라고 권유하셨어요”
당시 박길님 씨는 무엇이든 아이들과 먹고 살아야 한다는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광주에 있는 형부를 찾아가 한나절 오토바이를 배웠고 바로 기어가 있는 오토바이를 사서 우편배송 일을 하기 시작했다. 바로 직전, 평택시에서 운영하는 자전거교실에 다니며 자전거를 배운 것은 정말 다행스런 일이었다. 그리고 14년이 지난 지금, 평택우체국에서 현대이화아파트까지 우편물을 싣고 가며 덜덜 떨었던 기억은 어느새 추억이 됐다.

남자 60명 중 여성은 1명뿐
“저는 주로 평택지역 주택을 담당하고 있어요. 하루에 등기는 300여개, 일반 우편물은 1200개에서 1300개, 택배는 50개에서 80개 정도를 배송하죠. 오토바이에 싣는데 한계가 있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우체국에 와서 짐을 싣고 다시 나가곤 해요. 여자가 하기엔 힘든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남자 60명 속에 정식 여자 직원은 저 혼자뿐이라 그런지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박길님 씨는 오전 7시에 출근해 오후 7시나 8시에 퇴근하는 것이 일상이다. 그러나 요즘처럼 선거철이거나 명절이 되면 시간은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 우편물도 물론이지만 특히 택배물건 중에는 생물이나 급한 물건도 있어 그날그날 물건을 전부 배송하지 못하면 업무를 마감하기 힘든 까닭이다.
“더 일하고 싶어도 밤 10시가 되면 우체국에서 나가야 하는 규정 때문에 부득이하게 일을 미뤄야 할 때가 있어요. 그래도 집에 가면 항상 쓸고 닦는 건 필수죠. 아무리 사회생활을 하지만 가정주부이자 엄마로서 해야 할 일은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거든요”
대학교 4학년, 고등학교 3학년 딸을 둔 박길님 씨는 여성으로서나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철저하게 해 내는 사회 선배로서도 두 딸들에게 이미 큰 점수를 얻고 있다. 막내딸이 대학 졸업할 때까지 만이라도 이 일을 계속 하고 싶다는 그녀는 일이 힘들어도 월급이 항상 제때 나온다는 것, 그리고 퇴직 후 연금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한 일이라고 말한다.

주변에 베풀면서 살고 싶어
“배송을 하면서 여성이라 좋은 점은 고객들이 훨씬 편안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이에요. 주변 도움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한번은 짐을 가득 실은 제 오토바이가 넘어진 적이 있는데 지나가던 택시기사님이 차를 세우고 도와준 적도 있죠. 여자가 힘든 일을 한다고 우체국 내부에서 추천해 장관상이나 우정사업본부장상·체신청장상·우체국장상도 주셨어요. 여러모로 참 감사한 일이 많아요”
박길님 씨는 시상금으로 받는 돈을 주로 커피를 사거나 먹을 것을 사는 등 직원들을 위해 쓴다. 적은 돈이지만 후배나 동료들을 위해 사용하는 일은 삶을 더욱 풍요롭고 행복하게 해준다는 걸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적당히 손해 보며 살아가는 일이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는 건 그녀가 사회생활을 하며 깨닫게 된 삶의 철학이기도 하다.
“무엇이든 배우는 걸 좋아해요. 아직 정년까지는 10년 정도 남았지만 정년퇴직 하고 나면 수영도 배우고 노인복지회관 같은 곳에 다니며 스포츠댄스나 종이접기도 배우면서 그렇게 살고 싶어요. 가끔 한 번씩 노인복지회관에 배달을 가면 어르신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더라구요”
예전 집배원을 일컫는 우정주무관으로 살아가며 많은 남성들 틈에서도 당당하게 자신의 일을 해내는 박길님 씨, 그녀는 인터뷰의 끝자락에서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집에 사람이 없어 우편물을 찾아가라는 쪽지를 문 앞에 붙여 놓고 온 경우 다시 와서 갖다 주고 가라고 요청하는 분들이 있는데 지역 별로 배송코스가 정해져 있어 재방문이 어려운 만큼 시민들이 너그럽게 이해해주셨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며 활짝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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