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적으로 사는 게 행복한 삶이죠”

인생은 일기예보, 웃으며 살면 굴곡 넘어가
인간의 세치 혀 조심하고 마음 편히 가져야

 
목사이기도 한 임의진 시인은 한 신문지면에 기고한 글에서 “농사짓고 사는 촌로들이 학삐리 수도자보다 백배 건강하며 소로나 토머스 머튼을 능가하는 명상가, 신비가들로 가득한데 왜들 다른 데서 지혜를 구할까”라고 말한다.
그 말에 백배 공감한다. 농촌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며 무위無爲의 삶을 체득한 이들의 ‘몸 철학’이 어찌 책상 앞에 앉아 얻은 지식과 같을 수 있겠는가.

비오고 바람 부는 것이 인생
“농군의 자식으로 태어나 오로지 농사밖에 모르고 살았어요. 농사지으면서 왜 힘든 일이 없겠어요. 수해가 나서 농토가 전부 물에 잠기고 비바람으로 비닐하우스가 다 망가지기도 했지만 내가 운다고 달라질 게 없잖아요. 그냥 웃는 거죠. 비오고 바람 불다보면 또 맑은 날도 있고 인생이 다 그런 거 아니겠어요?”
인생은 일기예보와 같다고 강조하는 유용규(66) 평택보존화작목반장은 농사를 지으면 남들보다 앞서가지도 못하고 노력보다 대가도 미비하지만 그래도 그것에 만족하며 평생을 살았다고 말한다.
인터뷰를 시작할 당시 많이 굳어있던 그의 얼굴이 농사 이야기,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는 동안 많이 편안해지고 웃는 표정이 점점 많아진다.
“사람들은 배고파도 ‘죽겠다’, 추워도 ‘죽겠다’, 힘들어도 ‘죽겠다’, 좋아도 ‘죽겠다’, 매일 죽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잖아요. 죽겠다는 말이나 안 된다는 말보다 ‘이런 게 행복이구나, 이런 게 복 이구나’하며 긍정적으로 살아도 어차피 단 한 번의 인생을 살아가는 건 다 똑같은데 말예요”
유용규 반장은 1970년대 젊은 시절에는 어려서부터 봐온 대로 벼농사를 지었고 1982년부터는 벼농사보다 수입이 더 나은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다 1982년부터 1995년까지 오이농사를 지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오이보다 나은 수입을 찾다 1996년부터 화훼 쪽으로 눈을 돌려 현재까지 장미농사를 짓고 있다고. 

암도 극복해낸 긍정적 마인드
“농사꾼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일이 많죠. 수익이 발생하면 또 시설에 투자하고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경제적으로 어려운 일도 생기게 마련이니까요. 그래도 특별한 일 없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만 해도 감사해요. 힘든 일이 닥쳐도 항상 웃으니 사람들이 제게 괜찮냐고 물어보는데 그때마다 제가 ‘웃어야지 그럼 울어요?’ 라고 말하곤 해요”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부모가 선하게 산다는 것만 보여주려 했다는 유용규 반장은 그런 철학 때문에 아내와도 특별히 부부싸움을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뒤늦게 개인주택을 마련했던 것이 가장 행복한 일이라고 말하는 유용규 반장은 한때는 ‘위암’이라는 판정을 받으며 삶의 나락에 떨어져본 일도 있다고 털어놓는다.
“화훼를 시작하기 전에 위암판정을 받았어요. 한 10년 동안 속이 아팠거든요. 아내가 울면서 제게 ‘당신 암이래’ 했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어요. 그때 제가 그랬죠. 암이면 어떠냐고, 하나님이 오라해서 세상에 태어난 거고 때가 돼서 가라하면 가는 거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구요. 그래서 항암치료도 안 받았어요. 밥 잘 먹고 그냥 하던 일 계속 했죠. 그런데 어느 순간 암 소견이 없어졌어요. 사람들은 오진이었다고 하기도 하지만 전 그게 신앙과 제 긍정적인 마인드 때문이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죠”
유용규 반장은 자신이 평생을 지켜온 철학은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고 말한다. 거기에 덧붙여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적당히 손해 보며 살아가는 것이 현명하다는 말도 덧붙인다. 요즘 그가 벌인 새로운 ‘보존화’ 사업 역시 그에게는 건강을 지키는 활력소가 된다.   

새 도전, ‘보존화’에 힘 모아
“보존화는 아직 널리 알려진 기술은 아니에요. 평택지역에서 18명이 처음으로 시작했는데 다행이 호응이 좋아요. 일반적으로 생화는 송이 당 도매가로 300원 정도인데 보존화로 가공해서 판매하면 송이 당 3000원 정도로 10배 이상이 되니 농촌에서 부가가치를 올리는 사업으로는 꽤 괜찮은 편이죠”
2004년 프랑스에서 도입된 보존화는 심비디움·장미·호접란·국화 등 생화가 가장 아름다울 때 꽃을 따서 특수한 용액을 사용해 탈수·탈색·착색·보존·건조의 단계를 거쳐 꽃의 아름다움을 최장 5년간 생화처럼 보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현재는 청북면 어소리 평택보존화작목반에서 평택시농업기술센터의 지도로 운영되고 있다.
“보존화는 다양한 색상의 꽃을 만들 수 있고 다양한 상품으로 개발해 새로운 고부가가치 성장모델로 제시되고 있어요. 꽃잎을 만지면 마치 생화를 만지는 것처럼 부드럽죠. 꽃은 생명력이 길지 않다는 안타까움이 있는데 보존화로 만들면 오랫동안 두고 볼 수 있어 갈수록 어려움을 겪는 화훼농가들이 기대하는 사업이에요”
아내가 무릎이 아프다고 하는데 자신이 농사일로 고생만 시켜 그런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크다고 말하는 유용규 반장은 ‘세치 혀는 내 몸 안에 있지만 그걸 길들이기는 어렵다. 항상 세치 혀를 조심해야 한다’는 말로 인터뷰의 마지막에 ‘촌철살인寸鐵殺人’의 한마디를 던지며 활짝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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