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품 팔아 지역사 연구 기틀 만들었죠”

7년간 신문사 기고 글로 지역사 엮어
늦은 나이 박사학위 도전, 배움 행복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역사를 설명한 학자도 있지만 무엇보다 가장 가슴으로 다가오는 역사는 바로 ‘나의 역사’이며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역사’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내 조부모와 내 부모·나로 이어지는 삶의 흔적들이어서 더욱 친근하게 다가온다.

발로 뛴 ‘지역사 연구 1세대’
“초등학교 때부터 역사를 참 좋아했어요. 목회를 하기 위해 신학대학에 들어갔지만 결국 거기서도 역사를 포기할 수는 없었죠. 결국 역사를 전공하고 교직을 선택했는데 지금도 후회는 안 해요. 지역 민중들의 삶을 연구하고 싶었고 그 꿈을 교사가 되면서 이뤘으니까요. 학교 역사동아리부터 시작한 지역사 연구는 힘들게 발품을 팔면서도 제가 좋아서 할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일이었죠”
평택지역문화연구소 소장이자 한광중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김해규(52) 교사는 1989년 한광여자고등학교에 재직하면서부터 30여명의 학생들과 함께 평택지역답사를 시작했다. 학생들에게 역사의식을 심어주고 지역을 연구하겠다는 생각으로 진행한 답사는 한 달에 한번 향토기행을 떠나고 다른 지역도 답사하며 점차 단순한 이론에서 벗어나 실질적으로 지역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기 시작했다.
“처음 평택이라는 지역을 알고자 했을 때는 평택지역과 관련된 자료들이 없어 애를 먹었어요. 고작 구할 수 있는 게 평택군지와 송탄시사 정도였는데 그때 꼼꼼하게 밑줄쳐가며 지역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죠.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이었어요. 아이들을 데리고 마을마다 돌아다니며 어른들의 얘기를 듣고 기록하는 작업을 했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더라구요. 결국 학문적인 도움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공주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하며 본격적으로 지역사연구를 시작했죠”
김해규 교사는 2000년 5월부터 지역신문에 ‘지역 역사와 문화유적’이라는 칼럼을 연재하며 독자들로부터 잔잔한 반향을 일으켰다. 그리고 2002년부터는 ‘평택의 지명이야기’를 연재해 조상들이 대대로 살아온 지역의 숨은 역사들을 조명하기 시작했다.

“B급이어서 행복한 사학자”
“평택의 지명이야기를 조사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주민들의 삶의 이야기가 전개되더라구요. 그래서 파생된 것이 바로 ‘마을이야기’죠. 2002년부터 2008년까지 칼럼이 이어졌고 그것들이 결국 책으로도 출간됐어요. 칼럼을 연재하는 중간 중간 시민운동차원에서 ‘평택향토문화동호회’도 만들어 향토사강좌도 했고 아이들을 대상으로 향토문화체험학교도 열었는데 할 때마다 반응이 정말 좋았죠”
김해규 교사는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1인 7~8역을 해내면서도 힘든 줄 몰랐다며 활짝 웃는다. 성과들이 책으로 나올 때마다 내가 알게 된 것들을 세상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했다는 그는 발품을 팔아 얻은 성과물은 개인적으로 뿌듯함이 있을 뿐 결코 개인의 소유물이 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내가 얻어낸 성과물들이 완벽한 A급이라는 생각은 안 해요. 내가 만든 B급 결과들을 바탕으로 또 다른 열정을 가진 이가 훌륭한 A급 지역사를 만들 수 있다면 전 그것으로 만족하죠. 다만 내가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10여 년 동안 내 기억 속에 들어있는 것과 아직 발굴하지 못한 많은 것들을 향토 사료로 남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김해규 교사는 현재까지 일곱여 권의 책을 출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학문적 지식이 부족하다는 판단 하에 또다시 박사과정에 도전했다. 생업인 교직과 함께 해야 하는 일이어서 힘은 들지만 그것 역시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이기에 기꺼운 마음으로 해내고 있다고.

역사는 ‘삶’, 쉽게 다가가야
“책들을 내고 지역사 연구를 하다 보니 점점 이론적으로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박사과정을 하면서 경제적으로 힘든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새로운 지식들을 배우고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자칫 느슨해질 수 있는 내 자신을 곧추세울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 것 같아 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상식에 기반 한 역사관을 지향한다는 김해규 교사는 교직에서 물러나면 시골에서 농사도 짓고 글도 쓰며 찾아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인문학 바캉스 같은 걸 하는 게 꿈이라고 말한다.
“역사가 자칫 딱딱해서 대중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요즘은 일기형식이나 편지형식의 말랑말랑한 산문 글도 쓰고 있어요. 물론 대부분 역사에 관한 글이죠. 현재의 삶을 기록으로 남기고 삶에서 얻은 가치를 지향하는 것이 바로 역사니까요”
체계를 갖추지 못한 평택지역사를 발로 뛰어다니며 채집하고 기록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때론 마을 어르신들과 막걸리도 마시고, 일손도 거들며 진솔하게 그들의 삶 속으로 파고들었던 지역사 연구 1세대 김해규 교사, 아직도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았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이십대의 뜨거운 열정이 느껴지는 것은 비단 한사람의 생각은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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