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체험교육,  황무지에 뿌린 씨앗이죠”

 

국내 체험농장 선두주자, ‘어린이학농원’
자연과 함께 하는 어린이 교육 지향해

  

 
평택에는 1971년 진위면 동천리에 어린이 야외학습을 위한 ‘어린이학농원’이 조성돼 어린이들이 자연과 벗하는 새로운 교육장소로 활용됐다. 주로 수도권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던 ‘어린이학學농원’은 서울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故 이범식 교수와 박인선 여사 부부가 젊은 시절부터 모든 열정을 바쳐 손수 일궈낸 우리나라 체험학습 현장의 귀한 산실이다.

 

어린이 체험농장은 ‘남편 뜻’

“평택은 야외학습장을 만들기에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어요. 강이 있어 물고기를 잡을 수 있었고 산과 들과 나무가 있어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았죠. 100년도 넘은 아름드리나무도 많았으니까요”

진위면 동천리 진위천변에서 ‘어린이학농원’과 레스토랑 ‘이탈리아노’를 운영하는 박인선(86) 여사는 잠시 옛일을 회고하듯 생각에 잠긴다. 학농원은 각 학교 교장선생님 65명이 회원이 돼 황무지였던 땅을 일궈 체험농장을 만들었고 남편 이범식 교수와 박인선 여사 부부는 사비 3700만 원을 들여 학농원 내에 다양한 시설을 만들었다.

“학농원은 대문 없는 집, 흙 밟는 집이라고 불렸어요. 주로 서울YMCA에 속해있는 단체나 대도시 어린이들이 주로 다녀갔는데 아이들을 위해 10년을 무료개방하기도 했지요. 당시 저는 서울 정동 MBC 본관 앞에서 ‘이탈리아노’라는 레스토랑을 운영했는데 그곳 수입은 고스란히 학농원의 적자를 메우는 데 쓰이곤 했어요”

박인선 여사는 서울 정동에 2곳, 양평동에 1곳 등 모두 3곳에 직접 설계한 현대식 레스토랑을 짓고 80여명의 웨이트리스를 직원으로 두며 사업을 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1992년경 남편이 세상을 뜨자 박인선 여사는 레스토랑을 정리하고 남편과 함께 뜻을 두었던 어린이 체험농장을 직접 운영하기 위해 평택에 정착했다.

 

‘이탈리아노’ 평택에 새 둥지

“원래는 경치 좋은 곳에 괜찮은 호텔을 하나 짓고 싶다는 꿈이 있었는데 남편이 세상을 뜨고 나니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이게 됐지요. 그래도 어린이 교육을 포기할 수는 없었어요. 이후에 사람들의 권유로 서울에서 사용하던 집기들을 그대로 학농원에 옮겨와 레스토랑도 다시 열게 됐지요”

30대 중반까지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해온 박인선 여사는 교직을 그만둔 후 남편과 함께 어린이 교육 사업에 매진했다. 레스토랑은 교육 사업을 하기 위해 자금을 벌어들이는 하나의 방편이었다고 말하는 박인선 여사는 잠깐의 짬이 날 때마다 농장에 내려와 아이들을 돌보고 직접 하나하나 농장 일을 챙기며 지냈다고.

“내가 체험농장을 그만두지 못한 건 남편이 칼럼을 쓰던 신문지면에 이 농장에 대한 향후 계획까지 모두 공표해버렸기 때문이죠. 공신력 있는 신문에 그렇게 발표를 해버렸으니 지키지 않으면 결국 남편이 거짓말을 한 게 돼버리니까 내게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어요”

박인선 여사는 학농원에 체험을 위한 어린이들이 몰릴 때는 한번에 3000명의 식사를 만들기도 했다고 말한다. 체험농장을 운영하며 힘들고 어려운 일들도 많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농원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었던 건 이곳에서 아이들이 자연과 더불어 뛰어놀았던 아름다운 장면들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었고 현재도 그런 풍경들을 오래 이어가고 싶기 때문이라고.

 

순수한 교육장소로 남았으면

“당시에는 아이들이 물에서 놀다 옷이 다 젖어 벗은 채로 난로 가에 모여들면 송탄 재래시장에 나가 옷을 수 십 벌씩 구입해 입혀 보내곤 했어요. 새 옷을 입고 좋아하던 아이들 얼굴이 지금도 생생하죠. 그때 일곱 살이던 아이가 지금은 오십대 중반이 됐네요. 학농원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나 서울 이탈리아노를 기억하던 사람들은 지금도 이곳에 오면 그때 이야기를 하곤 하죠”

박인선 여사는 학농원 내에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것에 스스로 마음이 불편하다고 털어놓는다. 체험농장 운영비를 마련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지만 순수한 교육사업에 레스토랑을 접목한 것이 못내 미안하다는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젠 이곳도 평택사람들의 명소가 되어 쉽게 그만두지 못하는 것 역시 박인선 여사가 학농원 내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을 더욱 미안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예전 학농원은 천국 같다고 말하던 사람들이 많았어요.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뛰어놀고 수녀님들도 왔다 갔다 하고, 풍경도 계절마다 너무 아름다웠으니까요. 지금은 모든 것이 예전과 달라졌지만 이제 나이 들고 보니 그런 아름다운 풍경들만 보면서 살았으면 하는 생각이 많아져요”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매일 오전이면 식자재를 구입하기 위해 서울 가락동농수산물시장에 올라가 40여년 단골집을 찾는 것으로 분주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박인선 여사, 여전히 꼿꼿하고 품위 있는 모습으로 사람들과 조용히 대화하기를 즐기는 박인선 여사에게서는 곁에 있는 내내 은은한 난의 향기가 풍겨 나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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