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일곱 명을 모두 이 손으로 키웠지요”

 

여장부로 억척스럽게 살아온 여든 해
처음 보는 사람이어도 모두 ‘아들 딸’

 

 
노인 한 명이 세상을 뜨면 도서관 하나를 잃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노인이 살아온 연륜 속에는 수많은 역사와 가르침과 교훈이 담겨있다는 말이다. 청북면에서 슈퍼를 운영하며 어느새 여든 해를 훌쩍 넘긴 어르신의 삶 역시 눈물과 감동이 깃든 수많은 질곡의 시간들이 담겨 있어 마주앉은 내내 마음이 숙연해진다.

17살에 시집와 33살에 홀로 돼
“약초 재배하던 가난한 집 팔남매 중 큰딸로 태어나 열일곱에 시집와서 아홉 남매를 낳았어요. 딸 여섯에 아들이 셋이었는데 딸만 낳다보니 아들을 못 낳을까봐 버려진 아이 중 아들 다섯을 또 데려다 길렀지요. 그때는 먹고 살 길이 없어 자식을 버리는 일도 많았거든요. 그 후에 조카 다섯을 더 길렀고 내 밑에 있던 형제들까지 전부 내가 거둬야 했으니 다 합치면 스물일곱 명을 내 손으로 키운 셈이지요”
청북면 한산1리에서 돌머루슈퍼를 운영하는 허준심(81) 어르신은 아이들 스물일곱 명에 시어머니와 시누이까지 있었으니 부양해야 했던 식구는 그보다 훨씬 많다며 허허 웃는다. 서른셋에 남편이 죽자 고스란히 부양가족을 책임져야 했던 어르신은 오로지 하루하루 아이들 굶기지 않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매일 허리띠를 졸라매며 버텨냈다고.
“아이들 때문에라도 살아야 했어요. 내가 허리띠 조금만 더 졸라매면 저 한 녀석 더 먹이고 키울 수 있겠지 하는 생각에 배고픈 것도 몰랐고 김장 한 번 할 때마다 3000포기씩 하곤 했지요. 그렇게 억척스럽게 벌어서 아이들 입에 밥이 들어가는 걸 볼 때면 그렇게 마음이 좋았어요. 아이들이 힘들거나 귀찮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지요”
허준심 어르신은 경상도 쌍계사 인근에서 태어났으나 전라남도 순천으로 시집을 갔다가 20대 중반에 야채장사를 하던 남편을 따라 평택으로 올라와 청북면에 자리 잡았다. 평생 한글도 깨치지 못했지만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돈을 버는 동안 셈 하나만큼은 지금도 젊은 사람 못지않다고.

평생을 품어야 했던 정신박약 딸
“혼자 살기 힘들어서 재혼을 했는데 장애1급에 정신지체1급으로 간질까지 앓았던 큰딸 때문에 20년을 살고 결국 이혼을 해야 했어요. 미우나 고우나 내 자식이고 내가 품어야 하니까 그 딸을 데리고 쉰네 살에 정착한 곳이 바로 이곳 돌머루슈퍼지요”
어르신이 꾸려가는 돌머루슈퍼는 예전 기생이 막걸리나 안주를 파는 주막이었으나 어르신이 정착하며 슈퍼로 업종을 바꾸었다. 말이 슈퍼지 작은 구멍가게에 과자와 음료수 조금 놓인 것이 전부지만 지금도 지나가는 사람들이 술을 찾으면 술과 더불어 선뜻 공짜 안주를 내주는 것은 물론이고 배가 고픈 사람에게는 선뜻 밥까지 내준다.
“작년에 딸이 죽었을 때 영구차를 탔더니 운전기사가 갑자기 날 보더니 넙죽 인사를 하는 거예요. 3년 전 배고파서 슈퍼에 들어갔는데 내가 따뜻한 밥과 반찬을 내와서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먹었다고. 지금도 돈은 없지만 젊은 사람들은 나를 전부 ‘엄마’라고 부르니 마음하나는 부자예요”
어렵고 불쌍한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해 가진 것 전부를 털어주고서야 직성이 풀렸다고 고백하는 어르신은 나이 드니까 ‘그때 조금 절약해서 모아둘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큰 소리로 웃는다.

불쌍한 사람 거두는 건 평생의 습관
“지나가는 사람이 전부 ‘아들’이고 ‘딸’이니까 혼자 살아도 해코지하는 사람은 없어요. 이 사람이 반찬 해다 주고 저 사람이 빵 사다 주고 이래저래 챙겨주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먹이고 나면 행복해져요. 개나 고양이도 배고픈 녀석들한텐 밥도 주고 오랫동안 기르기도 하지요”
오래전에 자식들을 모두 시집장가 보내고 큰딸도 세상을 뜬 지금, 혼자서 슈퍼를 운영하고 있는 어르신은 아직도 여전히 어린 아이에게 과자 한 봉지나 하드쯤은 돈도 안 받고 내주기 일쑤다. 동네 사람들이 피우는 담배 성향도 이미 잘 알아서 사러오면 묻지도 않고 선뜻 집어 건네는 동네 터줏대감이기도 하다.
“그래도 딸하고 함께 서로를 의지하며 살았던 그때가 행복했어요. 내 나이 이제 벌써 여든 둘인데 올 때도 빈손이고 갈 때도 빈손이니 그리 아등바등 살 일도 없고, 나 있는 것 털어주면 사람 하나 살릴 수 있으니까 그것도 좋고…”
오전 5시 반에 가게 문을 열고 저녁 10시가 되면 문을 닫는다는 허준심 어르신, ‘밥 먹고 가라’라는 말이 어느새 습관이 되어 지금도 어려운 사람을 보살피며 지낸다는 어르신은 이날도 여전히 문 앞에 버려졌던 새끼고양이에게 밥그릇을 들이밀며 ‘먹어야 기운 차리지’라고 말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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