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손으로 시작, 35년간 자전거와 살았죠”
 

28세 때 자전거포 인수 뒤 자수성가
영어능통 ‘미스터 박’ 미군에게 인기

 

 
짐을 가득 싣고 달리던 짐자전거에서 통학이나 출·퇴근용으로 사용되던 자전거를 거쳐 요즘 마니아층이 형성된 고급 산악자전거에 이르기까지 자전거의 변천 과정은 우리나라 경제발전은 물론 서민들의 삶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미군들이 많이 찾는 자전거매장
“처음 자전거포를 시작한 건 1980년 송탄 신장육교 밑이었어요. 스물여덟 살 때 돈 한 푼 없이 다른 사람이 하던 자전거포를 인수해 ‘선경자전거포’로 시작했죠. 요즘 가만히 보면 자전거 디자인도 유행이 자꾸 돌고 도는 것 같아요. 35년 만에 사이클 핸들이 휘어진 것으로 다시 들어오는 거 보면 말예요”
독곡동 아주아파트2차 상가에서 ‘삼천리자전거 대리점’과 고급산악용 수입자전거인 ‘TREK 공식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는 박두현(62) 대표는 신장육교에서 1992년 이곳으로 대리점을 옮긴 뒤 현재까지 한결같은 자전거 사랑을 이어가고 있다. 송탄이라는 지리적 위치에 어울리게 영어도 수준급이다. 때문에 자전거를 사랑하는 미군들에게는 박두현 대표가 운영하는 자전거대리점이 회자되고 ‘미스터 박 숍’이란 이름은 구글 검색에서도 이미 댓글이 수없이 달릴 만큼 인지도가 높다.
“40년 전에는 자전거를 주로 배달용으로 썼죠. 그러다 1980년대에 90cc 오토바이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자전거는 사양길로 접어들었고, 90년대 ‘마이카시대’가 오면서 또 한 번 사양길로 접어들었죠. 그러다 IMF가 오고 기름 값이 치솟기 시작하면서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그 이후부터 현재까지는 건강을 생각한다는 이유로 자전거 찾는 사람들이 다시 늘어나고 있는 추세예요”
자전거의 역사를 줄줄이 이야기하는 박두현 대표의 얼굴이 어느새 진지해진다. 상향선과 하향선을 그려온 자전거의 역사는 곧 그의 역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10년마다 한 번씩 겪은 인생굴곡
“10년마다 한 번씩은 꼭 다른 사업에 투자해 그동안 벌어놓은 돈을 모두 잃곤 했어요. 부동산도 해보고 주식도 해보고, 할 수 있는 건 암튼 전부 해봤던 것 같아요. 10년 주기로 세 번 정도는 다른 사업을 했고 모두 실패한 후 결국 다시 자전거를 선택했으니까요. 재산을 탕진하고 힘들었던 순간에는 대리점 문을 닫을 생각도 했지만 이제는 이게 내 천직이구나 하는 생각으로 만족하며 일해요”
박두현 대표는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며 잠시 웃는다. 벌어놓은 돈을 잃고 이사도 숱하게 다녔지만 그래도 다시 꿋꿋하게 일어설 수 있었던 건 언제나 묵묵하게 박두현 대표를 믿고 따라줬던 아내 덕분이었다.
“지금은 자전거 수리며 판매·조립을 혼자 다 해요. 옛날에는 직원을 두고 일하기도 했는데 내 맘처럼 고객을 대하지 않아 그때부터는 혼자 일하기 시작했죠. 그렇게 하기까지는 아내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항상 고생만 시킨 아내에게는 늘 고맙고 감사하죠”
오래 전, 신문을 구독하면 경품으로 자전거를 공짜로 주곤 했는데 그때부터 자전거는 무조건 공짜로 받을 수 있는 거라는 인식이 생겨서 대리점들이 정말 힘든 지경에 처하기도 했다. 당시 그런 일들은 공정거래에 위배된다는 생각으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해 막아낸 사람도 바로 박두현 대표였다.

‘가화만사성’은 최고의 고객응대
“소상공인도 살아야 하는데 대기업의 횡포를 넋 놓고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어요. 덕분에 시사를 다루는 라디오에서 전화인터뷰도 하고 당시 막 취임했던 노무현 대통령에게 소시민을 위하는 대통령이 되어달라는 당부도 했죠. 그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큰 획을 그었던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자전거 대리점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모두 파산했을지도 모르니까요”
박두현 대표는 슬하에 세 자녀를 두었고 모두 장성해 품을 떠났다. 그 중 큰딸은 아버지의 자전거사업을 물려받아 용이동에서 자전거대리점을 운영하고 있고 법원사거리에 2호 대리점도 개점했다. 힘든 IMF를 지나면서도 자전거대리점으로 세 자녀 모두 대학에 보냈다고 말하는 박두현 대표는 어느새 환한 미소를 짓는다.
“내가 조금 손해 보며 사는 게 장사를 할 때는 물론이고 인생에서도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건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죠. 아내와도 서로 싸우거나 하지 않아요. 우리가 화목해야 손님들에게도 잘 해줄 수 있으니까요. 살아오면서 많이 느끼는 건데 물질도 중요하지만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느냐는 질문에 사업하고 자녀들을 키우는 동안 늘 마음뿐이었던 봉사를 하고 싶다고 말하는 박두현 대표, 자전거를 고치기 위해 인터뷰 도중 매장에 들어온 미군 손님 죠수아는 “미스터 박~ 좋은 사람”이라며 “기사 잘 내주세요” 하는 말과 함께 엄지를 한껏 지켜 올린다.

 

 

 

 

저작권자 © 평택시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