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 사람에 대한 연민에서 시작하죠”

 

이십대 때 노동 현장 체험, 삶의 목표 정해
심리상담 공부, 나·타인에 대한 이해 깊어져

 

 
모든 진화된 역사는 현실의 불편부당을 인지하고 이를 시정하기 위한 행동으로부터 변화돼 왔다. 현실에 안주하는 이와 그렇지 않은 이의 차이는 현재보다 조금 더 나아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의 유무에 의해 결정된다. 때문에 미래에 대한 희망은 추구하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선물 같은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참했던 노동현실에 마음아파
“20대 초반에 서울 공장 미싱보조로 들어가 일한 적이 있어요. 당시 제가 본 노동자의 현실은 그야말로 참담했죠. 아침에 하혈을 한 여성이 병원에 잠시 들렀다 오후에 나와 미싱 앞에 앉아야 했고, 가족이 있는 가장이 하루아침에 부당하게 해고당하기도 했어요. 대학 졸업장은 제게 큰 의미가 없었죠. 그때 이미 제 마음은 평생 노동자들과 함께 한다는 것으로 굳어있었으니까요”
정미(45) 평택안성지역노동조합 위원장은 크고 작은 집회가 있는 장소에 가면 언제나 만날 수 있다. 작은 체구에 다부진 인상을 가진 정미 위원장은 노동자들의 현실을 몸으로 겪던 중 연고도 없는 평택에 내려와 몇몇 제조업 공장을 전전하며 회사 내에 노조를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노조를 만드는 과정에서 번번이 해고를 당하곤 했어요. 그런데도 그 일을 포기하지 못했던 건 아마도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어떤 사명감 때문이었을 거예요. 2001년부터 뜻있는 분들과 함께 지역노조를 만들었고 2005년부터 위원장을 맡고 있는데 지금은 민주노총평택안성지부 의장도 맡고 있어서 갈수록 책임감까지 더해지는 것 같아요”
전라남도 순천이 고향인 정미 위원장은 1남 6녀 중 다섯째 딸로 자랐다. 소극적인 성격으로 사춘기를 겪었다는 정미 위원장은 내면에 숨어있는 소극적인 성격이 집회현장에서도 자주 고개를 숙이는 모습으로 나타난다며 미소 짓는다. 그러나 그런 소극적인 성격의 정미 위원장을 남자들도 힘들다는 투쟁의 현장으로 이끈 건 다름 아닌 사람에 대한 ‘연민’ 이었다.

모든 운동의 시작은 ‘연민’에서
“사람이 사람으로서 존중받아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참 많이 했어요. 그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구요. 사측의 이익에 따라 마음대로 해고하고 마음대로 괴롭히는 일들은 도저히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죠. 비록 회사에서 월급 받고 일은 하지만 전부다 제각기 소중한 사람들이고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거든요. 내 가족이라 생각하면 절대 그렇게는 못하죠”
정미 위원장은 저 사람이 힘들다는 것을 돌아볼 수 있는 마음, 그 사람의 아픔을 함께 느끼고 내가 조금이나마 힘이 돼주고 싶다고 느끼는 그런 마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찾는 것이 바로 ‘연대’를 만드는 단초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연민들이 모여 만들어진 연대는 곧 문제를 헤쳐 가는 힘이 된다고.
“힘들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어요. 몸이 힘든 걸 힘들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제일 힘든 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돌파구가 보이지 않을 때예요. 투쟁활동을 하는 것은 이제 나 하나만의 일이 아니라 노조원들과 그들 가족의 생계까지 걸린 일이니 제가 힘들다고 쉽게 그만둘 수 있는 것도 아니죠”
노조원 중에는 힘들어서 그만두는 사람도 있고 생활고로 사측의 편에 서게 되는 사람도 있다. 정미 위원장은 40대 초반까지만 해도 함께 고통을 나누던 사람들의 변한 모습을 보며 무척 견디기 힘들었다고 털어놓는다. 그리고 지금은 어느 정도 그들을 이해하게도 됐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심리상담 공부, 이해 폭 넓어져
“노조 현실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것 같아요. 탄압도 갈수록 심해지고 노조사무실 상근도 어려운 상태죠. 먹고사는 문제들도 해결해야 하는데 서로 연대해야 하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잖아요. 결혼을 안 한 것도, 노조 활동을 택한 것도, 모두 내가 선택한 일이니 후회는 없어요”
정미 위원장은 요즘 심리상담 공부에 한창이다. 사람에 대한 이해가 좀 더 풍부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도전한 일이지만 공부를 시작한 이후에는 정작 자신에 대해 돌아보게 되는 일이 더 많아졌다고.
“투쟁을 하다보면 아픔을 간직한 조합원들을 많이 만나게 돼요. 쌍용차 해고자들도 마찬가지구요. 상처가 많은 그들이 세상 속에서 온전히 잘 살아가는 일에 제가 배운 상담공부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쌍용자동차는 해고된 시점에서 6년이 흘렀지만 아직 한발 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는데 해고니, 투쟁이니 이런 것을 모두 빼더라도 한 인간의 삶에 있어 6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거든요”
정미 위원장은 집회현장의 노동자들을 따뜻하게 보지 않는 건 사측만이 아니라 시민들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이 못내 안타깝다고 말한다. 그들을 단지 투쟁하고 있다고만 볼 게 아니라 그들도 가족이 있고 삶이 있는 한 인간이라고 생각해 달라고 부디 일을 하고 돈을 벌어 가족들과 행복하게 사는 꿈을 꾸어야할 그들이 왜 험한 투쟁의 현장까지 나와야 했는가를 조금만 깊이 있게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한참동안 먼 허공을 바라본다. 

저작권자 © 평택시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