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음악적 재능도 모두 하나님 빽이죠”

 

평택시 최초의 합창단, 음악 발전에 기여
종양 발견 이후 봉사하는 삶으로 바뀌어


 
‘시작은 미약했으나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말은 종교적인 이야기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 많은 사람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문화예술의 불모지였던 평택이 아름다운 음악이 흐르는 곳으로 변모할 수 있었던 것도 미약했던 시작을 잘 이끌었던 이들이 있었음을 우리는 부디 기억해야 할 것이다.


어려서부터 보인 음악적 재능
“전쟁 때는 대부분이 그랬지만 나도 초등학교를 간신히 졸업한 후 식구들 뒷바라지를 해야 했어요. 이후 검정고시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셋째 오빠가 검사가 되고 난 뒤에야 스물네 살의 나이로 지금의 세종대 전신인 수도여자사범대학 성악과에 입학할 수 있었죠. 내 본격적인 음악 역사는 그때부터 시작됐지만 초등학교 4학년 때 학예회에서도 지휘를 하곤 했으니 아마도 음악적 재능은 어려서부터 있었던 것 같아요”
김종숙(77) 선생은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힘 있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1966년 결혼 이후 당시 남녀공학이던 한광중·고등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기 시작한 김종숙 선생은 교사 초창기부터 기독교 장로교회인 평택교회에서 1981년까지 성가대 지휘자로 첫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제게 가장 큰 사명감은 풀이 죽어있는 학생들의 자존감을 세워주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가르친 한광여중합창단과 한광여고합창부가 각각 경기도와 전국 규모의 학생합창콩쿨대회에 나가 1등을 하고나니 평택군 전체가 발칵 뒤집혔죠. 그땐 평택에서 그런 대회에 나가 상을 받은 일이 없었거든요”
김종숙 선생이 이끄는 한광의 합창부는 당시 평택군에서 하는 수많은 행사에 초청받아 수준 높은 합창을 선보였고 이후 출전하는 대회마다 큰 성과를 거뒀다.


음악협회 창립, 삶의 시련 찾아와
“서른일곱 살이 되던 1974년에 영양실조로 오른쪽 눈이 멀어 시각장애 2급 판정을 받았어요. 눈이 안 보인다는 사실에 절망해서 자살하려고 수면제도 먹어봤지만 그마저도 제 맘대로 되진 않더라구요. 실명 이전엔 제 별명이 ‘천사표 꾀꼬리’였는데 실명 이후엔 아이들이 나를 ‘마귀할멈’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죠. 그땐 나도 젊었고 내게 닥친 시련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으니까요”
김종숙 선생은 자신의 아픔을 음악과 신앙으로 꿋꿋이 이겨내고 1979년 평택지역 교회 성가대원 중에서 노래 잘하는 사람 16명을 선발해 ‘단비합창단’을 창단했다. 성령의 단비를 뿌린다는 뜻으로 지은 단비합창단은 1990년까지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내가 만든 합창단은 대회에서 늘 좋은 성적을 거두곤 했어요. 그런데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좋은 성적을 얻은 건 제 실력이 아닌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대회 나가기 전날이면 늘 새벽까지 대여섯 시간을 엎드려 하나님께 기도했고 그 간절한 기도가 하나님께 닿은 결과일 뿐이니까요. 1990년에는 몇몇 음악교사들과 함께 음악협회를 만들었는데 그때가 음악인으로서 참 보람 있는 시기였어요”
1990년 평택 최초로 설립된 음악협회는 김종숙 선생을 비롯해 평택지역 음악교사인 김희태(평고)·이창녕(한광고)·임화선(동일공고)·이영애(한광중) 교사 등이 주축이 됐다. 그리고 연달아 어린이현악합주단, 어린이합창단, 어머니합창단 등을 창단시켰다. 그러나 모든 이들의 축하와 환호에도 불구하고 정작 김종숙 선생에게는 또 한 번의 불행이 찾아왔다.


70대에도 여전한 음악 열정
“1993년 우연히 받은 건강검진에서 암 진단을 받고 교사직을 그만두게 됐죠. 그리고 남들은 잘 믿지 않겠지만 오로지 기도만으로 병이 완전히 치유됐어요. 울며 기도만 하던 그때, 살려만 주면 수족을 못 쓰게 되는 날까지 봉사하며 살겠다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후 요양보호사와 호스피스 자격증을 따고 지금까지도 요양원이나 시골마을 장애인의 활동보조인으로 봉사하고 있죠”
김종숙 선생은 병이 낫고 난 이후에도 여전히 음악과 함께 하며 비전제일교회에서 반주를 하고 성가대 지휘를 시작했다. 그리고 2010년, 70대 중반의 나이에 120명 단원을 모아 ‘실버단비합창단’ 지휘를 시작했다. 내년에는 예전 새마을어머니합창단 단원들로 구성된 ‘엔젤마더합창단’도 창단할 예정이다.
“나는 평생 내 자신이나 남에게 참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완벽을 추구하며 살았어요. 때문에 살아오는 동안 음악적으로 큰 성과는 거뒀죠. 그러나 삶에 있어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것은 내 자신이 시련을 겪고 나서야 깨닫게 된 것 같아요. 그때는 한참 신을 원망하기도 했지만 내가 겪은 다양한 시련만큼 지금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이 있는 상담을 해줄 수 있으니 그것도 참 다행스런 일이죠”
1990년 평택시문화상을 수상하고 올해 12월 기독교 문화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공로패를 수상한 김종숙 선생, ‘나는 하나님의 빽으로 사는 사람’이라고 강조하는 김종숙 선생은 이제는 나이가 들었으니 조금은 엄격했던 자신을 풀어놓아도 되지 않겠느냐며 환하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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