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관 협력을 쉼 없이 말하지만
여전히 ‘관’이 중심이 되어
‘민’에게 협력을 요구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관’이 먼저 문턱을 낮추고,
자세를 낮춘다면 협력하지 않을
‘민’은 없을 것이다

▲ 박정인 관장
세상을 배우는 학교 작은도서관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두 사람이 서 있다. 한 사람은 엘리베이터 문 앞에 서 있고, 또 한 사람은 버튼을 누르고 기다린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문 앞에 서 있던 사람이 먼저 타고 뒤이어 버튼을 누른 사람이 올라탄다. 목적지에 해당하는 버튼을 누가 누를까?

아마도 대부분의 예상처럼 버튼을 누르고 기다리던 사람이 목적지의 버튼을 누를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엘리베이터가 복잡하다면 누가 먼저 내리는지는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목적지의 버튼을 눌렀던 그 사람이 아직 내리지 않은 상태라면 문이 계속 열릴 수 있도록 안에서 열림 버튼을, 만일 먼저 내린 상황이라면 밖에서 진행방향과 같은 쪽의 버튼을 누르고 다른 한 사람이 편히 내릴 때까지 기다릴 것이다”

“커피숍에 나란히 두 명의 손님이 들어온다. 자연스럽게 한 사람은 자리에 가서 앉고, 또 한 사람은 주문하는 곳으로 걸어와 선다. 커피를 다 마시고 난 뒤에도 주문하려고 서 있던 사람이 정리를 하고 가져다 놓는다”

‘갑·을 관계’가 지금의 현실에서는 상하 관계 또는 주종 관계를 일컫는 말이 되어버렸지만 원래 단어의 뜻은 계약서를 작성하면서 편의를 위해 ‘갑’과 ‘을’로 지칭하는 말이었을 뿐이다. ‘갑’과 ‘을’은 상하나 주종이 아닌 동등한 위치에서 각자의 역할에 따라 계약을 맺는 주체인 것이다.

그런데 내게는 ‘갑을 관계’처럼 원래의 뜻과는 다르게 이해되는 단어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민관 협력’이라는 말이다. 민관 협력은 말 그대로 민간부문과 공공부문이 협력한다는 말인데 이 말은 민간부문에서는 좀처럼 사용하지 않을뿐더러 공공부문에서는 자신들에게 무게중심 두고 사용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민관 협력’이라면 민은 관에 협력하고, 관은 민에 협력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 선거 때를 제외하고는 주로 그 힘이 관에 쏠려있는 우리사회에서 관이 먼저 머리를 숙이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관이 중심이 되고 민이 협력해야 한다는 식으로 이야기 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조직력·정보력·경제력 그 어느 하나도 시민사회영역이 공적영역을 앞서갈 수 없는 상황에서 공적영역이 중심이 되고 시민사회영역이 보조가 되어서는 진정한 민관 협력이 이루어질 수 없다.

‘갑’이 아닌 ‘을’에게 너의 권리를 네가 주장하고, 네가 찾아서 행사해야 한다고 말하는 동안 ‘갑을 관계’는 계속되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갑’이 아닌 ‘을’이 협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변하지 않는다면 ‘민관 협력’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 될 것이다.

상호협력이 중요하겠지만 지금 힘을 가지고 있는 ‘관’이 ‘민’에 협력해야 민관 협력이 이루어질 수 있다.

최근 정부와 평택시를 보면 민관 협력을 쉼 없이 말하지만 여전히 ‘관’이 중심이 되어 ‘민’에게 협력을 요구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진정한 민관 협력을 위해 ‘관’이 먼저 문턱을 낮추고, 목소리를 낮추고, 자세를 낮춘다면 거기에 협력하지 않을 ‘민’은 없을 것이다.

‘갑을 관계’가 더 이상 주종관계나 상하관계가 아닌 말이 되기를, ‘민관 협력’이 관이 하는 말이 아니라 함께하는 말이 되어 상호협력을 통해 살기 좋은 평택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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