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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연의 세상돋보기 - ‘벽’도 말을 할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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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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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곳곳에 그린 벽화가
대부분 취로就勞사업 차원이나
단순히 낡고 흉물스러운 이미지를
덮기 위한 작업이었다 해도
행정부의 일방적 작업이었던 것에 비해
참여형 벽화를 그리겠다는 이번 시도는
큰 변화가 아닐 수 없다

 

   
▲  이수연 전 부이사장
한국사진작가협회

‘벽도 말을 할 줄 안다’는 말은 ‘금지를 금지하라’는 문구들과 함께 1968년 5월 ‘프랑스 혁명’ 때 등장했다. 드골정부에 대한 저항에서 시작된 파업과 시위가 거리 곳곳의 벽에 이런 슬로건을 탄생시킨 것이다.

오늘날 그라피티로 부르는 이런 구호나 글씨 혹은 그림들은 애초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시작되어 뉴욕의 브롱크스가를 통해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태생적으로 불법일 수밖에 없는 성격상 재빠르게 그려야 하는 탓에 스프레이를 이용하는 그라피티는 이제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로 펼쳐지는 미술운동이자 도시의 문화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나아가 장 미셀 바스키아의 ‘낙서화’나 키스 하링의 ‘픽토그램(picto-gram)’처럼 제도권 미술로 진출하여 성공을 거둔 사례를 비롯해 여러 거리미술 작가들을 현대미술가로 인정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리움미술관이 바스키아의 낙서화를 전시한 적이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아직 그라피티에 대한 평가는 한 나라 안에서도 엇갈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3월 중순에 지하철 전동차에 그라피티 작업을 해놓고 출국한 호주인 사건을 비롯하여 많은 그라피티를 공공시설 파손행위로 보고 단속과 제거를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그라피티작가 뱅크시의 작품은 소더비 경매에서 20만 파운드라는 엄청난 가격에 낙찰되기도 하고 그의 작품으로 판명되면 그림이 그려진 문짝이나 벽을 통째로 보호하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게릴라처럼, 주인 몰래 그려놓고 도망가는 그의 그라피티를 순례하는 관광패키지까지 등장했다고 하니 예술과 낙서의 경계가 어디까지인지 모호할 뿐이다.  그라피티가 등장한 이유는 많은 사람들과 만날 수 있다는 벽의 효용성 때문인데 이를 공인하고 공식적으로 끌어들인 것이 요즘 유행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로서의 벽화작업이다. 이런 기반위에 그려진 것인지 모르지만 평택에도 그라피티는 차고 넘친다. 하지만 그것이 세인의 주목을 끌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그리고 있고 더 그린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 아주 ‘별난 일’이 생겼다. 지난 5월 22일 신장1동이 관할지역에 벽화를 그리겠다며 주민들을 모아놓고 전문가 설명회를 개최한 것이다. 그동안 곳곳에 그린 벽화가 대부분 취로就勞사업 차원이나 단순히 낡고 흉물스러운 이미지를 덮기 위한 작업이었고 간혹 다른 필요성 때문이었다 해도 집행기관 차원의 일방적인 작업이었던 것에 비하면 참여형 벽화를 그리겠다는 이번 시도는 큰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어찌 보면 격이 떨어지는 낙서나 그림들을 공공公共미술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들 작업이 설치장소를 의식하고 그 맥락에 맞춰서 그림을 고안하며 이것은 다시 인근건물이나 도시풍경과 어울림을 추구하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이런 작업들은 특정지역에 활기를 불어넣고 장소와 공간에 맞게 반응하며 주민들과 소통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나아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지역의 공동체들과 함께 작업하는 가운데 사회문제를 겨냥한 장소맞춤형으로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눈에 보이는 그림 그 자체보다 이를 볼 사람들과 이 작업에 참여할 지역에 기반을 두고 상호 소통과정에 더 중점을 두어야 비로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 차원에서 신장1동의 ‘별난 일’은 늦었지만 아주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쉬운 것은 같은 공동생활 경제권이면서 행정상 나뉜 그 옆 동洞이 그 시점에 이미 벽화를 그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결코 비난이 아니라 평택의 숱한 벽화가 시너지 효과를 만들지 못한 이유를 알고 있다면 두 개의 동이 정보를 공유하고 함께 고민하면서 작업을 했다면 같은 예산으로 보다 효과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말이다.       

단순히 벽에 그림을 입히는 것이 아니라 그 벽으로 하여금 말을 하도록 해야 진정한 의미를 지닐 수 있기에 각자의 말보다 한 목소리로 통일된 말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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