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11월 16일

 

 
평택운동장에서 전국 9개 팀 경기
평택유학생축구단, 제2회 대회 우승
 

“평택축구구락부에서는 이십이, 이십삼 양일간 전조선축구대회를 개최한다는데, 각지에서 참가팀의 신입이 열광적으로 몰려와 무려 수십 팀에 달하였다고 하며, 작년 우승의 안성팀은 금년에도 기어이 우승하려고 미리부터 맹연습을 하고 있다하니, 금년 영예의 우승기는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일반 팬은 이번 제이회 대회를 손꼽아 기대하고 있다”(조선일보, 1940년 6월 21일자)

우리나라에 근대식 축구가 전래된 것은 19세가 말경이었다. 1900년에는 유학생 출신의 궁내부 참리들과 어전 동역관들이 처음으로 축구클럽을 조직하고 휴일을 이용해 훈련원과 서삼평 등지에서 영국인 교사의 지도를 받으며 축구를 즐겼다고 한다. 1905년에는 관립 외국어학교에서 프랑스인 교사 마르텔이 학생들에게 축구를 지도하기 시작하면서 축구가 보급이 시작됐다. 이듬해 1906년에 궁내부 예식원 주사인 현양운 등 30명이 모여 대한축구구락부를 조직하고 그해 10월 황성기독교청년회와 우리나라 최초의 공개 경기를 가졌다.

이로부터 34년이 지난 1939년 6월, 평택축구구락부는 제1회 전국축구대회를 개최했다. 불행하게도 제1회 전국축구대회에 대한 기록이 없어 확인이 불능하다. 다만 안성에서 출전한 팀이 우승했다는 것만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다음해 1940년 6월 22일과 23일에 개최한 제2회 전국축구대회는 신문에 광고를 할 정도로 널리 홍보했다. 광고에 의하면 대회 장소는 평택운동장(지금의 평택성동초등학교학교 운동장), 신청기간은 6월 21일 오후 8시까지, 참가비는 3원이었다. 상품으로는 우승기와 상금이 있었고 동아일보·매일신보·조선일보 평택지국 등 신문사에서 후원을 했다. 그 결과 제1회 대회 우승팀인 안성체육회축구단을 비롯해 경성철공소축구단·경성금호축구단·경성성남축구단·경성도하축구단·수원고려축구단·평택축구단·평택백호축구단·평택유학생축구단 등 9개 팀이 참가했다. 평택에서는 3개 팀이 참가했다. 제1회 대회에서 우승한 안성팀이 2회 대회에서도 우승을 목표로 ‘맹렬하게 연습한다’고 소문이 날 정도였다. 과연 제2회 전국축구대회의 우승기는 누가 차지했을까? 평택팀이었다. 평택유학생축구단이 우승했다. 체면치레는 했다. ‘수만 명’의 열광적인 응원 덕분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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