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보존의 법칙은
장소성·고유성·희소성이다.
전통 문화유산은 우리가 후대와 함께
공유해야할 공공재다.
그러므로 본래의 장소를 훼손하거나
보수한답시고 변형시키거나
파괴해서 본래의 가치를
떨어뜨려서는 안 된다

 

 

   
▲ 김해규 소장
평택지역문화연구소

 서유럽을 여행해본 사람이면 안다. 그들이 역사적 인물들을 어떻게 기억하고 선양하는지. 원형이 잘 보존된 생가, 위대한 사상가, 문학가, 예술가들이 생전에 사용하던 유품, 그들이 묻힌 무덤은 그 자체로 문화재다. 관광자원이다. 국가의 격格을 높이고 지역의 고유성과 문화적 역량을 보여주는 자랑거리다. 여행자들은 자신이 존경하던 사상가의 생가와 무덤·유품 앞에서 무한한 상상과 영감을 얻을 수 있다. 필자는 프랑스를 여행할 때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 파리의 몽마르트 공동묘지와 페르 라세즈 공동묘지다. 몽마르트 공동묘지에는 작가 에밀 졸라가 묻혀 있고 페르 라세즈 공동묘지에는 오스카 와일드·쇼팽·가수 이브 몽탕, 그리고 파리 코뮌 전사들의 무덤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문화유산은 유형의 물질 뿐 아니라 역사적 기억과 장소성·희소성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다. 역사적 기억은 만들기도 힘들지만 보존하고 해석하여 후대에 전승하기는 말처럼 쉽지 않다. 근래 평택지역에서 역사적 인물에 대한 연구와 선양사업이 다양하게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인물 선양사업은 주의할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객관적이지 못할 때에는 세상의 외면을 받고 잘못 해석되었을 경우에는 큰 낭패를 면치 못한다. 인물선양사업과 함께 중요한 것이 해당 인물과 관련된 문화유산 보전사업이다. 필자가 가장 아쉬워하는 인물 가운데 영희 지천만(지영희로 잘 알려져 있음)이 있다. 국악 현대화의 선구자로 추앙받는 국악인이고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중앙대학교와 평택지역에서 크게 선양하는 인물이지만 실상 평택지역에는 지영희 선생의 옛집이나 유물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하와이에서 서거해 묘墓도 그곳에 있다. 몇 년 전 지역사 연구자들이 어렵게 탐문하여 찾아낸 옛집 터도 포승제2산업단지 건설 사업으로 사라져버렸다. ‘국악현대화의 선구자’ ‘국악현대화의 영웅’ 운운하는 것이 무색할 지경이다.

최은창은 평택이 낳은 위대한 예인이다. 팽성읍 평궁리 두레농악에서 성장해 걸립패의 상쇄가 되고 평택농악을 만들기까지 그가 쏟은 열정과 노력은 후배들의 귀감이 된다. 얼마 전 전주에서 최은창 선생 탄생 1백주년을 기념하여 성대한 기념공연이 펼쳐졌다고 한다. 국립무형문화유산원이 주최한 공연에서 평택농악은 왜 한국 최고의 무형문화유산인지를 확실히 보여줬다. 최은창 서거 이후 평택농악은 엄청난 성장을 하였지만 아직도 아쉬운 것이 많다. 아직도 웃다리농악과 평택두레농악의 역사를 말해주는 사료관 하나 없고, 최은창 선생을 비롯하여 평택농악 예인들의 평전 한 권 편찬되지 못했으며, 최은창 선생의 옛집과 예인들의 유품이 제대로 정리되어 전승되지 못하고 있다. 필자의 기억으로 최은창 선생 옛집은 선생이 작고 한후 가족들이 매각한 뒤 다른 지역으로 이거하는 과정에서 타인에게 팔려 창고가 되었고 유품들 일부는 흩어진 상태로 안다. 이것은 평택농악 예인들의 다른 유적과 유품들도 비슷한 처지다. 

여기서 필자는 다시 한 번 문화유산보존의 법칙을 떠올린다. 장소성·고유성·희소성이 그것이다. 전통의 문화유산은 우리가 후대와 함께 공유해야할 공공재다. 그러므로 본래의 장소를 훼손하거나, 보수한답시고 변형시키거나, 파괴해서 본래의 가치를 떨어뜨려서는 안 된다. 최은창 선생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공연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늦었더라도 학술적으로 연구하고 옛집을 재구입해 복원하며 생전 유품들을 모아 기억을 되살리는 노력도 절실하다. 평택시민들의 관심과 평택시·평택시의회·평택농악보존회의 분발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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