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역사를 통해
무엇을 배울 것인가?
민족이 위기에 빠질 때
스스로 고통을 감내하며
독립투쟁의 길로 나설 수 있을까?
올바른 가치관으로
세상을 볼 수 있을까?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할 때이다

 

▲ 김해규 소장/평택지역문화연구소
진위면 일대 경주 이 씨 상서공파는 백사 이항복의 후손들이다. 백사의 후손들은 조선 후기 영의정 4명·좌의정 2명·대제학 2명의 둥 수많은 정승 판서를 배출하고 억만금의 재산을 모았던 명문가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경주 이 씨를 진정 명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단하지만 존경할만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경주 이 씨가 역사의 별이 된 것은 일제강점기다. 국권상실의 위기에서 후손들은 안락하고 요족한 삶을 포기하고 가족 모두가 전 재산을 팔아 항일독립운동에 헌신했다. 덕분에 고문당해 죽고, 굶어 죽고, 모진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같은 시기 평택과 가까운 아산에 용력이 대단한 장사 형제가 살았다. 주위에서는 난세를 구할 장군감이라고 입을 모았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일찍이 무과에 급제했고 격변하는 세상에서 처신을 잘하여 출세를 거듭했다. 해평 윤 씨 가문의 윤웅렬과 윤영렬 형제 이야기다. 윤웅렬은 개화파의 일원으로 일본시찰을 다녀와 별기군의 좌부사령관을 지냈고 갑신정변 때는 형조판서에 등용되었다. 해외망명에서 돌아와서는 법부대신·궁내부특진관 등 요직을 두루 섭렵했다. 윤웅렬의 아들 윤치호도 일찍부터 출세했다. 조사시찰단으로 일본에 간 뒤 그곳에 남아 근대학문을 공부했고, 상하이를 거쳐 최초로 미국유학을 다녀왔다. 선구적 기독교인이었으며, 독립협회 회장을 지냈고, 애국계몽운동시기에는 안창호가 세운 평양대성학교 교장을 지냈다. 실로 최고의 개화지식인, 최고의 근대적 가문이라고 할 수 있다.

비슷한 길을 걸었던 두 가문은 1910년 국권강탈의 역사적 현장 앞에 섰다. 국권상실의 현장에서 그들은 선택을 요구받았다. 한 길은 항일독립투쟁의 길이요 다른 한 길은 친일의 길이었다. 경주 이 씨는 모든 것을 다 바쳐 독립투쟁의 길을 택했고 해방 후 고난의 현대사를 살았던 반면, 해평 윤 씨는 친일의 길을 택했다. 덕분에 일제로부터 귀족 작위를 하사받고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으며, 거기에 더하여 해방 후에도 단죄되지 않고 대통령과 장관·서울시장·세브란스병원 원장·외교관·서울대학교 총장 등 이전보다 더 큰 부귀영화를 누렸다.

최근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정부와 보수언론들은 기존의 검인정 교과서의 필자 80% 이상이 좌파학자라며 균형 잡힌 역사상 복원을 위해서는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해서 새로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지난 해 황우여 교육부장관은 ‘역사교육은 정부가 시켜야 한다’는 매우 위험한 발언까지 했다. 역사교과서가 국정화하면 안 되는 이유는 수 백 가지가 넘는다. 역사관을 획일화시키면 안 된다는 논리, 정권과 일부 보수층의 역사관을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주입시키면 안 된다는 논리, 학문의 다양성을 저해하는 행위라는 주장 모두 틀리지 않는다. 하지만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누가 어떤 의도로 국정화를 획책하는 가’의 문제다. 또 그들은 ‘국정화를 통해서 무엇을 목적하는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필자는 국정화 주장 이면에 친일과 친독재를 미화하려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교과서를 정치·경제사가들도 집필해야 한다는 주장의 이면에는 일제침략과 지배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려는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의 의도가 반영되고 있다고 의심한다. 그들의 의도대로 역사교과서가 편찬될 때 일제침략과 수탈은 ‘수탈이 아니라 수출’이 되고, 우리민족은 그들의 지배 덕분에 근대화가 되었다고 배워야 한다. 친일관료·경찰·군인들의 행위는 근대화에 동참해 민족발전에 기여한 행위가 될 것이다. 정부수립 뒤 친일잔재청산을 막고 독재정치로 현대사를 질곡에 빠뜨린 이승만은 국부(國父)로 추앙될 것이다. 5.16군사정변은 혁명이 될 것이며 광주민주화항쟁은 광주폭동으로 돌아가야 한다. 경주 이 씨 이회영 일가의 독립투쟁은 축소 왜곡될 것이며, 해평 윤 씨의 친일의 역사는 미화되고 그들은 여전히 대한민국의 명문가로 이름을 날릴 것이다. 이 같은 역사상으로 학생들이 배울 때 아이들은 역사를 통해 무엇을 배울 것인가? 민족이 위기에 빠질 때 스스로 고통을 감내하며 독립투쟁의 길로 나설 수 있을까? 올바른 가치관으로 세상을 볼 수 있을까?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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