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4년 3월 23일

 

 

돈 없으면 죽는 세상에 동생은 고물상 운영
형은 기생집에서 재산 탕진, 동생 자살기도

“돈 없으면 죽는 세상에 돈 아까운 줄 모르고 청루에 방황하는 형과 이루 싸워가며 살기가 싫어서 다량의 쥐약을 먹고 죽으려는 아우가 있다. 경부선 평택역 평택리(平澤里) 고물상 박선익(朴善益, 29)의 형 되는 순기순=모다 假名=이가 일상 주색에 침범하여 낭비가 심하므로 아우는 이를 충고하였으나 듣지 않으므로 견디지 못하여 지난 二十三 일 오후 五시경 그 같이 자살을 꾀하였던 것이라는데 생명이 위독하다고 한다”(동아일보, 1934년 3월 27일자)

형제애兄弟愛는 ‘형제간이나 동기간의 사랑’으로 때로는 목숨도 함께 나누기도 한다. 우리 역사상에서도 보면 형제애와 관련된 일화가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예산의 ‘의좋은 형제 이야기’다. 이 일화는 형제간의 우애를 상징하는 것으로 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한 마을에 따로 농사를 지으며 사는 형제가 있었는데 가을이 되자 추수를 하고 각자 논에 볏가리를 쌓아 놓았다. 형이 생각하기를, 동생은 결혼해 새로 살림이 났기에 쌀이 더 필요할 거라고 생각하고는 밤중에 몰래 논으로 나가 자기 볏가리를 덜어 동생 볏가리에 쌓아 놓았다.

그날 밤 동생이 생각하기에 형은 식솔도 많으니 쌀이 더 필요할 거라 여겨 밤중에 나가 자기 볏가리를 덜어 형의 볏가리에 쌓아 놓았다. 이튿날 논에 나가 본 형제는 깜짝 놀랐다. 분명히 지난밤에 볏가리를 옮겨 놓았는데 전혀 볏가리가 줄어들지 않았던 것이다. 이튿날 밤에도 형제는 같은 행동을 했고 셋째 날에 드디어 형제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서로 밤중에 볏가리를 옮겼던 것이다.

그런데 형제간의 우애는 이처럼 항상 해피엔딩만 있는 것은 아니다. 때에 따라서는 형제간의 슬픈 이야기도 있다. 일제강점기 1934년은 매우 어려운 시기였다. 돈 없으면 죽는 그런 세상이었다. 당시 평택리 지금의 원평동에는 고물상을 운영하는 박선익이라는 청년이 있었다. 먹고 살기 위해 적지 않은 고생을 하는 터였는데 그의 형은 살림에는 관심이 없고 청루靑樓 즉 기생집을 들락거리며 주색에 빠져 돈을 흥청망청 썼다. 이를 보다 못한 동생 박선익은 제발 그렇게 살지 말라고 여러 번 충고를 했지만 형은 마이동풍이었다. 동생의 말을 귓등으로 듣고 여전히 주색에 빠져 지냈다.

속이 썩을 대로 썩은 박선익은 더 이상 충고가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고 죽기로 작정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잘못된 형을 바로잡고 싶었다. 결국 동생은 쥐약을 먹었고 생명까지 위태로워졌다. 동생 박선익은 그렇게 해서라도 사랑하는 형을 바로잡고자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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