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바꾸고 발전시켜 온 것은
해고의 위험을 무릅쓰고 싸워 온
누군가들이다. 저항을 시작하는
우리 모두의 작은 용기,
그것이 우리의 절망을 먹고 크는
노동개악이라는 거대한 괴물을
무너뜨릴 수 있는 가장 큰 힘이다

 

 
 ▲ 김기홍 부소장
평택비정규노동센터

박근혜 정부는 노동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여당과 국회를 겁박하며 ‘노동개악’을 시도하고 있다. 정부라는 집행부를 감시할 의회가 집행부의 ‘행동대’가 되는, ‘비정상이 정상이 되는’ 그러한 현실을 우리는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해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해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는데, 지금은 또 청년들을 위해 노동시장 개혁이 시급하다고 한다. 그런데 정부의 정책을 살펴보면 비정규직을 위한 것도, 청년들을 위한 것도 아니며, 오로지 기업만을 위한 정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청년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부모 일자리를 빼앗겠다는 발상이라는 것을 모를 사람들이 없는데도 정부는 우리 세금으로 신문과 방송에 광고비를 물 쓰듯 하며 노동개혁은 미래 세대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규직인 부모 일자리를 빼앗아서 임금도 낮추고 그것도 비정규직인 청년 일자리를 많이 만들겠다는 것이 어떻게 미래 세대를 위한 것일 수 있겠는가. 부모 일자리를 빼앗겠다는 발상은 ‘低성과자 해고제도’에 잘 나타난다. 일을 잘 못하고, 교육을 시켜도 달라지지 않는 노동자조차 해고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라는 이유로 해고를 쉽게 할 수 있는 저성과자 해고 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정말 일을 잘 못하는 사람들이 저성과자로 구분돼서 교육을 받거나 해고되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저성과자를 가리기 위한 평가는 회사가 세운 기준에 따라 이뤄지는데 그 기준은 주로 노동자의 작업 성과보다는 상급자에 대한 태도나 지시에 대한 복종 등 노동자의 순종을 요구하는 것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즉, 평가하는 사람 마음에 들어야 평가를 잘 받을 수 있다.

또한 회사가 평가기준을 강화해 버리면 지금껏 일을 잘하던 사람도 성과가 낮은 사람이 되어 버린다. 잘하던 일도 회사에서 업무를 바꾸어 낯선 일을 하게 되면 성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게 저성과자는 ‘만들어지는 것’이다.

평가 기준이 아무리 잘 세워져 있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회사의 업무평가에 따라 노동자들이 쭉 줄 세워지면 그중 누군가는 반드시 상대적으로 성과가 낮은 쪽에 해당되게 된다. 그건 내가 될지, 옆의 동료가 될지, 다른 누가 될지 알 수 없다. 회사 말을 안 듣고 노조활동을 열심히 하는 이들이 될 수도 있지만, 기강을 잡는다는 의도로 순차적으로 저성과자로 만들어 교육을 받게 하고, 해고할 수도 있게 된다. 즉, 서로서로 경쟁하고 괴롭히면서 노동자들끼리 희생양을 만들어 내라는 이야기인 셈이다.

결국 박근혜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노동정책은 노동자를 위한 정책이 아니라 기업을 위한 정책이고, 모든 노동자를 가난하게 만들어 기업의 배를 불려 주겠다는 정책일 뿐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점점 더 강하게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왜일까?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사는 우리들의 절망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포기하고 절망할 수밖에 없는 사회를 만들어 놓고는 그 포기와 절망에 기대서 마음껏 기업을 위한 정책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정책들은 최소한 마음을 모아 저항하는 힘조차 형성할 수 없도록 노동자를 경쟁시키고, 갈등시키고, 단결하지 못하게 만드는 내용이다. 앞으로 일어날 모든 저항을 가로막겠다는 것, 저항해 보겠다는 의지조차 형성하지 못하도록 그저 순응하게 만들겠다는 것, 인격과 권리를 가진 인간으로서의 노동자가 아니라 사회와 기업의 부속품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찌 보면 작은 용기일지 모른다. 물론 그 작은 용기가 비정규직인 사람들에게는 일자리를 위태롭게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지켜줄 노동조합조차 없는 사람들에게는 저항이라는 단어조차 이미 익숙하지 않은 말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까지 사회를 바꾸고 발전시켜 온 것은 해고의 위험을 무릅쓰고 싸워 온 누군가들이며, 익숙하지 않은 저항을 시작하면서 용기를 키워온 누군가들이다. 그 누군가가 이제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저항을 시작하는 우리 모두의 작은 용기, 그것이 우리의 절망을 먹고 크는 노동개악이라는 거대한 괴물을 무너뜨릴 수 있는 가장 큰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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