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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학특별기획 - 평택사람들의 길 <5. 도시의 골목길, 추억과 그리움> -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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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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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시가지의 중심은 ‘서정리역전골목’이었다
역전골목 좌우와 국도 1호선 건너편에는
공공·종교·의료기관, 식당과 단체가 자리 잡았다

 

서정리장은 1910년 전후 개장했다.
서정리역전에 장시場市가 형성되기 전에는
진위읍내장이나 신장동의 새장터,
안중장과 수원장, 소사장이
가장 가까운 장시場市였다.
서정리장은 전형적 오일장으로 시작했다.
개시일은 2일과 7일이었는데
가까운 진위면과 고덕면·서탄면,
멀게는 오성면·청북면, 화성 양감 주민들이
서정리장을 이용했다.
서정리역전 골목들은
대부분 종縱으로 연결됐다.
현재와 같이 횡橫으로 연결된 도로망은
1970년대 후반에서야 조성됐다.


 

   
▲ 서정리역전골목과 경부선 서정리역/드론 박성복 사장





4 - 평택북부지역의 새로운 거점 서정리역전골목

이촌향도하였던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었고, 주민들의 만남의 장소였으며, 아이들에게는 즐거운 놀이터였던 골목길. 누구에게는 문학이었고 누구에게는 음악이었으며 누구에게는 삶의 전부했던 그 길을 따라 함께 기억여행을 떠난다. <평택시사신문>은 앞으로 11회에 걸쳐 평택지역의 길 ‘도시의 골목길’을 연재한다. 도시의 골목길을 통해 평택사람들의 삶을 따라가 보자. - 편집자 주 -

   
▲ 서정리시장에서 바라다 본 서정리역(1976년)
   
▲ 서정리역전 송탄PB사거리 일대

 

■ 서정리역전에 근대도시가 형성되다
서정리역전 시가지는 경부선 철도 개통과 함께 발달한 근대도시다. 역전 주변은 철도역이 설치되기 전까지만 해도 서정천을 중심으로 대추동(대속동), 신촌, 서두물 같은 크고 작은 마을들이 흩어져 있었다. 근대도시가 발달하면서 서정리역 동쪽으로 국도 1호선이 건설됐다. 시가지는 철도역과 국도 1호선 사이에 발달했다.
서정리역 설치 뒤 평택이나 수원과 연결된 도로는 지금은 ‘서정역로’라고 명명된 옛 국도 1호선뿐이었다. 197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산업도로라고 불렀던 송탄로나 서정리역에서 송탄고등학교 방면으로 곧게 뻗은 정암로, 서정리역 앞을 남북으로 달리는 탄현로는 공터이거나 좁은 골목이었다. 시가지가 확대되고 서정천 주변이 개간되면서 서정리역 주변의 대추동은 사라졌고 대신 신서, 신설, 번성 같은 새로운 마을들이 생겼다.
일제강점기 시가지의 중심은 서정리역전골목이었다. 역전골목 좌우와 국도 1호선 건너편에는 공공기관과 종교기관·식당·의료기관·각종 단체의 사무실이 자리 잡았다. 공공기관으로 가장 먼저 설치된 것은 1922년 10월에 설립된 서정리초등학교와 이듬해에 설치된 서정리우편소다. 1914년 첫 모임을 가졌던 서정감리교회도 1920년대 초가 되면서 교회의 모양을 갖췄고, 1930년대에는 서정동성당이 설립됐으며, 서정리장이 발전하면서 1927년에는 서정리근검저축조합과 서정리소작상조조합, 이삼년 뒤에는 평택금융조합 서정리지소도 설치됐다. 근대적 상업도시로 발달하면서 일본인과 중국인들의 정착도 늘었다. 평택지역 최초의 중화요리집으로 알려진 쌍성원雙盛園(현재는 쌍흥원雙興園)도 본래는 서정리역전에서 시작됐다. 근대도시가 발달하면서 평택 북부지역의 사회운동도 서정리역전을 중심으로 전개됐다. 서정리역전이 북부지역 사회운동의 거점역할을 하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 후반부터다. 1930년대 초에는 남상환·김영상을 중심으로 ‘서정리소년동맹’ ‘서정리청년동맹’ ‘서정리노동조합’ ‘형평사서정리지부’ 등이 활동했고, 동아일보 서정리분국, 조선일보 서정리분국과 같은 언론기관도 설립됐다.
평택 북부지역의 중심으로 거듭났던 서정리역전골목은 한국전쟁 중 신장동 일대에 미군이 주둔하면서 중심지로의 역할이 크게 줄었다. 서정리역전이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춘 것은 1977년 소도시가꾸기사업의 영향이다. 이 과정에서 서정리역 동쪽으로 흐르던 서정천이 복개됐고 좁은 골목이었던 정암로, 탄현로가 확포장됐으며, 싸전골목도 확장됐다.
 

   
▲ 서정리전통시장의 장날풍경
   
▲ 서정리라는 지명의 발원처인 서정우물


 

■ 서정리장의 역사는 길고도 짧다
서정리장은 1910년 전후에 개장했다. 서정리역전에 장시場市가 형성되기 전에는 진위읍내장이나 신장동의 새장터, 안중장과 수원장, 소사장이 가장 가까운 장시場市였다. 서정리장은 전형적인 오일장으로 시작했다. 개시일은 2일과 7일이었는데 가까운 진위면과 고덕면·서탄면, 멀게는 오성면과 청북면, 화성 양감면 주민들이 서정리장을 이용했다.
서정리역전 골목들은 대부분 종縱으로 연결됐다. 현재와 같이 횡橫으로 연결된 도로망은 1970년대 후반에서야 조성됐다. 그래서 서정리장도 종으로 연결된 넓은 골목을 중심으로 펼쳐졌다. 정암로가 조성되기 전 성동신협 서정리지점 앞은 넓은 공터였다. 시장은 공터를 중심으로 남쪽(우측)으로는 싸전, 북쪽(좌측)으로는 생선전과 채소전, 가축전, 피륙전(옷가게) 등이 있었다. 시장생선의 이면암(76) 씨는 19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서정리장은 ‘외골목장’이었다고 술회한다. 싸전 서너 집, 생선전 너 댓집, 채소전 몇 집, 옷가게 몇 집, 가축전 약간이 전부였다. 그러다보니 상설시장이 되지 못했고 장날에도 장꾼들이 모이지 않아서 오전 장을 보고 나면 파했다. 시장 안에서 가장 돈을 잘 벌은 상점은 쌀집과 지금은 낮설은 솥집이었다. 그래서 상인들 사이에서도 미곡상이나 솥집 주인쯤 되면 대우를 받았다. 서정리장이 상설시장으로 변모한 것은 1990년대 전후다. 근래에는 아케이드까지 설치돼 장사하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 서정리전통시장에서 41년 째 장사하는 시장생선집
   
▲ 서정리역전 싸전골목의 세운자전거점 풍경

■ 대물림으로 시장골목을 지킨다
신도시는 희망의 거리다. 그것은 일제강점기 평택역전이나 서정리역전도 마찬가지였다. 철도역이 설치되고 근대도시가 형성되자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역전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이들의 꿈은 각기 달랐지만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싶은 열망에서는 서로 다르지 않았다.
서정리장의 토박이 장사꾼들은 장돌뱅이 출신이 많다. 가장 오래된 시장생선집이나 맞은편의 그릇집 사장도 장돌뱅이 노점부터 시작했다고 했다. 시장생선 이면암(76) 씨는 29살 젊은 나이에 시장에 나왔다. 도로 포장일을 하던 남편의 벌이로는 좀처럼 살림이 펴지 않아 시장 바닥으로 나왔다. 처음에는 빨간 치마에 하얀 브라우스를 입고 장사를 할 정도의 어리보기 장사꾼이었다. 방물장수 사과장수에서 시작해 생선장수까지 안 해 본 것이 없었다. 장터마다 실어다주는 장차를 타고 평택장·오산장·장호원장 등 다녀보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 덕분에 자녀들 건사하고 살림살이도 펴게 됐다. 8년 전부터는 외동아들이 가업을 잇고 있다. 아들에게 생선장수를 권한 것은 다름 아닌 이면암 씨다. 잘 다니던 직장까지 팽개치고 시장으로 들어온 아들은 처음에는 적응에 힘들어했다. 하지만 감원으로 명퇴당하거나 해고당하는 친구들이 늘어나는 요즘에는 조금 일찍 사업을 시작한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옛 싸전골목에서 세운자전거점을 하는 김홍근(71) 씨는 1972년 5월 군대에서 전역한 뒤 서정리역전으로 들어왔다. 청년시절 그의 꿈은 자전거점포를 갖는 것이었다. 자전거점에 취직해서 기술도 익히고 돈도 모아 1974년 꿈에 그리던 자전거점을 열었다. 당시 자전거는 큰 재산이었다. 가격도 쌀 한가마니 값을 줘야 살 수 있었다. 쌀 한가마니의 가치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었던 시절의 이야기다. 88올림픽 이후에는 수리보다는 구매손님들이 크게 늘었다. 그만큼 돈도 많이 벌었다. 김홍근 씨의 자전거점이 번창하는 동안 싸전은 크게 위축됐다. 재래식 아궁이가 입식으로 바뀌면서 솥전도 자취를 감췄다. 문을 닫은 싸전 점포들은 성실함을 무기로 열정적으로 사업하는 김 씨에게 접수(?)됐다.
사람의 왕래가 잦은 철도역과 시장 부근에는 맛집들이 많다. 서정리역전 골목의 대표 맛집은 서정리역전식당과 대왕탕, 자매식당, 조가네부대찌게 그리고 시장순대국이다. 본래 이들은 역전골목에 있었다. 그러다가 싸전이 쇠퇴하고 시가지가 확장 정비되는 과정에서 송탄농협 본점으로 올라가는 싸전골목 안으로 들어와 속칭 먹자골목을 형성했다. 골목상권의 맹주는 1972년에 문을 연 서정리역전식당과 그 뒤에 개업한 대왕탕이다. 1991년에 문을 연 자매식당도 값싸고 시원한 동태찌게로 유명해졌다. 서정리역전 먹자골목이 입소문을 타면서 근래에는 신장동에서 아구찜으로 명성을 얻은 진미집도 골목 안으로 들어왔다. 시장골목의 대표 맛집 시장순대국은 34년 전 문을 열었다. 주변사람들에 따르면 본래 이 집은 사장님의 어머니가 시장 귀퉁이에서 순대노점을 하다가 가게를 얻어 장사했는데 나중에 아들이 시장순대국집을 개업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서정리시장은 현재 세대교체를 하고 있다. 상업의 패러다임도 옛날과는 많이 달라졌다. 고덕국제신도시 건설로 부동산시장도 들썩인다. 40~50년씩 장사를 했던 1세대들이 일을 놓거나 돌아가시면서 자녀들이나 친척들이 승계하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변화가 큰 만큼 새 희망을 꿈꾸는 사람도 많아졌다.
 

   
▲ 서정리 싸전골목의 서정리역전식당

 

 

글·사진/김해규 평택지역문화연구소장
다큐사진/박성복 평택시사신문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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