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년 12월 17일

 

조선신극단 유일단 일행 3일간 공연
무산아동 위한 노동야학 경비 마련


 

 


 

“朝鮮新劇團 唯一團 一行이 京釜線 平澤에 到着함을 機會로 하여 當地 振威靑年會에서 勞動夜學을 設置키 爲하여 지난 十七부터 十九까지 每夜 七時半에 當地 李會政氏 庭園에서 慈善演劇을 興行케 됨에 따라 當地 東亞, 時代 兩支局에서 後援케 되었는데, 現代무엇보다도 敎育에 줄인 無産者의 兒童을 爲하여 多數 觀覽하기를 바란다 하며, 兩支局에서는 三日間 愛讀者 諸位를 慰安키 爲하여 半割引券을 配付한다고 한다”(시대일보, 1924년 12월 19일자)

‘신극’은 우리나라에서 20세기 이후 서구西歐의 새로운 사조와 방법의 영향을 받아 생겨난 연극의 형태다. 우리나라의 신극 운동은 그 시초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이견이 있지만 1923년 일본 교토京都 유학생들이 주동이 돼 시작한 ‘토월회土月會’로부터 연유한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이들이 영향 받은 원류가 레퍼토리나 기타 여러 가지 면으로 보아 일본의 ‘문예협회文藝協會’나 ‘예술좌藝術座’에 있는 것에 의심이 없다고 보아 대체로 한국 신연극에 있어서의 근대적 자각은 1920년대 이후에 비로소 싹텄다고 보기도 한다.
평택에도 신파극이 공연됐을 것으로 보이지만 당시 신문에 보도된 것은 1924년 12월 19일자 <시대일보>가 유일하다. 기사에 의하면 조선신극단 유일단(唯一團) 일행이 공연을 했다. 그런데 유일단은 개성 출신 이기세가 1912년 창립해 1913년대 전국 순회공연을 한 바 있으며 1914년 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유일단이라는 극단이 1924년 12월 17일부터 19일까지 3일간 평택에서 공연했다. 이 유일단이 이기세가 창립한 유일단 인지는 좀 더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유일단 일행은 진위청년회와 <시대일보> <동아일보> 양 평택지국의 후원으로 자선공연을 했는데 공연의 목적은 무산아동을 위한 야학 경비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회정의 집 정원에서 17일부터 19일까지 매일 저녁 7시 30분부터 공연이 시작됐다. 양 지국은 애독자를 위해 입장권 금액의 50%를 할인해줬다. 공연은 대성황이었다. 그리고 지역 유지들은 노동야학을 위한 동정금同情金을 기부했다.
기부자와 금액은 다음과 같았다. 심상기(沈相驥), 유창근(柳昌根), 남진우(南鎭祐), 이화연(李花硏)이 각각 5원, 이회정, 이용준(李容俊), 김진규(金鎭圭), 한규역(韓圭億) 각 3면, 한무교(韓武敎), 이덕준(李德俊), 이병갑(李炳甲), 박선녀(朴仙女) 각 2원, 이상훈(李相勳), 박영칠(朴英七), 민병갑(閔丙甲), 김용우(金溶雨), 박각록(朴覺綠) 각 1원. 이밖에도 많은 관람객들이 동정을 했는데 1원 이하는 생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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