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려는 모든 노력들이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될 거라는 희망으로
용기 있는 부모가 되어야겠다.
적어도 잊지 않을 용기
함께 잊지 말자고 말할
용기가 필요하다

 

▲ 최정희 학부모/죽백초등학교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고 사는 것이 익숙한 요즘인데 공연히 별것 아닌 일에도 어쩌다 한 번씩 바보처럼 울컥할 때가 있다.

4·16 세월호 2주기를 맞이하는 요즘, 길거리에서 재잘거리며 지나가는 교복 입은 학생들을 볼 때도, 제주도에 놀러가고 싶다는 아이들의 이야기에 푸른 바다를 떠올릴 때도, 얼굴을 씻느라 물 때문에 숨을 참아야하는 몇 초간의 짧은 순간에도 가슴이 아파올 때가 있다.

굳이 아픈기억을 묻어두지 않고 자꾸 기억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너무 아파서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상처를 자꾸 들춰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처음엔 피지도 못하고 져버린 아이들이 불쌍해서, 남겨진 유가족들의 절절한 고통이 느껴져서 울었다. 진실을 말하지 않고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 누군가에게 화가 났다. 세상은 절대 약자들의 편이 아니라는 사실에 분노했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는데도 잊어야한다고 말하고 정말로 잊고 살아가는 세상이 절망스러웠다. 그러다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갈 이 나라가 얼마나 안전한 나라일까 생각하니 무서워졌다.

먹거리 안전도, 교통안전도, 사회복지제도, 그 무엇도 보장받을 수 없는 나라. 가정도 학교도 직장도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은 나라.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이 되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또다시 되풀이 될 수도 있는 비극적인 사건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나는 두렵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두려움 때문에 잊으려고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비겁하지만 안타깝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핑계를 대면서 잊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마도 역사는 잊으려는 자와 기억하려는 자의 대립이며 잊게 하려는 자와 기억하게 하려는 자의 싸움일지도 모른다.

그 길고 지루하고 힘든 싸움이 유가족들만의 싸움은 아닐 텐데 유가족들에게만 맡기는 것은 미안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하지 않는 정치인들만 탓하고 욕할 일이 아니다. 그들은 언제나 그랬으니까. 작년 이맘때쯤 나이 지긋하고 교양 넘치시는 어떤 어르신이 진위면에 있는 세월교 세월호사건을 잊어야 한다고 했을 때 아직 해결된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어떻게 잊느냐고 대꾸했던 그 이후로 잊지 않기 위한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다.

안전한 나라를 만들어주겠다고 아이들에게 한 약속은 일개 학부모가 하기에는 너무 거창하고 허무맹랑한 약속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은 생각해보면 정말 쉬운 일일지도 모른다.

잊지 말아야겠다. 힘들지만 그래도 잊지 말아야겠다. 내가 기억의 끈을 놓아버리는 순간 우리 아이들의 미래는 절대 밝아지지 않을 거라는 절박함으로. 내가 머리로, 마음으로, 몸으로 기억하려는 모든 노력들이 언젠가는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될 거라는 희망으로 열심히 살아야겠다. 그렇게 용기 있는 부모가 되어야겠다. 적어도 잊지 않을 용기. 함께 잊지 말자고 말할 용기가 필요하다. 아이들에게 2년 전 저 먼 바다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었는지 다시 말해줄 수 있는 용기. 잃어버린 노란 리본을 다시 걸고 다닐 수 있는 용기, 작은 정성이라도 아직까지 싸우고 있는 유가족을 응원하기 위해 후원할 수 있는 용기. 누군가 잊어야 한다고 말할 때 잊으면 안 된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그런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 모두에게 남아있는 이 상처와 슬픔이 어서 빨리 치유되었으면 좋겠다. 상처를 아물게 하는 길은 진실을 아는 것.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게 하는 것. 우리 사회의 안전장치가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아지게 하는 것. 그러기 위해 잊지 않을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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