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7월 8일

 

 

 

당거리 주민 15년간 간척한 130정보
일본인 요시모토가 조합 간부와 결탁

“평택군 오성면 당거리(平澤郡 梧城面 堂巨里)에 있는 간사지 연고자 박봉규(朴鳳圭) 등 일백 육십 이명은 십오 년 동안이나 땀을 흘려 제방을 축조하고 경낙하여 오던 간사지 일백 삼십 정보를 이즈음 떼이게 될 위기에 이르렀다 하여 팔일 총독부와 경기도청에 넷째번의 진정서를 제출하여 당국의 선처를 바랐는데, 진정서에 의하면 이 간사지의 유래는 다음가 같다(하략)”(조선일보, 1939년 7월 9일)

평택의 특징 중 하나가 간척이다. 서해안 일대는 예부터 간척으로 꾸준히 토지를 넓히고 농지를 확보해왔다.

평택은 조선시대에도 꾸준히 간척이 됐지만 근대시기인 일제강점기에도 적지 않은 간척이 진행됐다. 그런데 간척으로 인한 분쟁 또한 적지 않았는데 1939년 대규모 분쟁이 발생했다. 바로 오성면 당거리 일대였다.

당시 당거리 간척은 734정보로 1924년 11월 5일부터 시작됐다. 김교영金敎泳 등 715명이 공유수면 매립 허가를 받아 개척조합을 조직했다.(‘그때 그 시절 평택은’ 제112호 참고) 조합원은 15년간 간척한 땅이 자신의 소유로 알고 경작해왔는데 1934년 4월 개척조합 간부와 일본인 요시모토吉本惠七郞가 결탁해 조합원이 간척한 땅을 빼앗으려고 한 것이다.

요시모토와 간부들은 매립 허가운동비와 공사비 40만원을 조합원이 분담하던가 아니면 조합원 모두 탈퇴하라고 압박했다. 이때 조합원 162명에게 130정보를 양도하겠다고 해 조합에서 탈퇴했다. 그런데 요시모토는 1939년 봄 인부 300여 명을 보내 제방을 파괴하고 제방공사를 자신들이 한 것처럼 해 양도한다고 했던 땅까지 차지하려고 했다.

박봉규朴鳳圭 등 162명은 15년간 피와 땀으로 간척한 130정보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총독부와 경기도청에 세 번이나 진정서를 제출했지만 전혀 반응이 없었다. 더욱이 요시모토는 소작 계약을 하자고 강권하자 총독부와 경기도청에 네 번째 진정서를 제출했다.

일제강점기 우리의 피와 땀으로 간척한 땅을 일본인이 차지하려고 하는 전형적인 작태가 바로 평택에서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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