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10월 5일


 

 

 

일제 전시체제 식민지배 협력 관변단체
친일 활동 최전선에서 지역치안 담당해

 

“금번 경방단이 새로 됨에 따라 당지 소방조는 탄생 이래 삼십년 만에 해산식을 거행하고 근속년수에 따라 조품과 상장을 진정하였으며, 방호단은 탄생 후 이년 만에 역시 경방단 신설로 인하여 해산하였는데 영년 근속자의 표창과 상품을 주고 관민다수 참석 하에 해산식을 거행하였다”(조선일보, 1939년 10월 5일)

일제강점기 1930년대 이후는 만주사변, 중일전쟁 그리고 태평양전쟁으로 이른바 ‘전시체제기’라고 한다. 일본의 대륙침략은 식민지 조선을 병참기지화로 만들고 인적·물적 자원을 수탈했다. 대표적인 것이 강제동원·징용·징병·위안부 등의 인적 수탈과 미곡 공출·유기(鍮器·놋그릇) 공출 등 물적 수탈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 시기 친일 관변단체가 조직됐고, 통폐합됐다.

일본은 대륙침략에 인적·물적 자원을 동원하기 위해 1938년 6월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을 결성했으며 이어 관변단체들을 통폐합했는데, 그 중 하나가 경방단警防團이다.

일제는 1937년 11월 전시체제에 대비해 방공법을 시행하고, 1939년에는 조선총독부 경무국에 방호과를 각도 경찰부 경찰계에 각각 설치했다. 그리고 이를 구체적으로 강화하고자 방호단·소방조·수방단 등을 통합해 경방단을 조직했다.

경방단은 도지사와 경찰서장의 지도·감독 하에 평시와 전시를 불문하고 방공·소화·수방·기타 경방에 대비하는 임무를 담당했고, 경찰의 보조기관 역할까지 수행했다. 1939년 말 경방단 수는 2753개, 경방단원은 18만 1221명이었다.

1939년 7월 3일자로 ‘경방단규칙’이 제정되면서 전국적으로 경방단이 조직됐는데 평택 경방단은 1938년 10월 초 소방조와 방호단을 통합해 조직됐다. 평택 소방조는 일본인 거주지의 화재 등 재난을 방지하기 위해 1909년 조직됐다. 당시 일본인 거주지는 평택역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방호단防護團은 1937년 중일전쟁이 전개되면서 조직됐는데, 평택도 이 시기에 조직됐다. 방호단은 지역마다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경호반·경보반·방수반·교통정리반·피난소관리반·공작반·방호반·구호반·배급반 등으로 구성됐다.

경방단은 전시체제기 치안을 맡아 식민지배정책에 충실한 주구의 역할을 담당했는데 평택경방단도 친일단체로 그 역할을 충실히 했다고 할 수 있다.

저작권자 © 평택시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