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이 ‘분노’를
자발적으로 표출할 수 있다는 건
사회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여태 청년들의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은
지금과 달랐기 때문이다

 

 

▲ 임윤경 사무국장
평택평화센터

요즘 우리 사회를 나타내는 신조어들이 있다. ‘헬조선’ ‘흙수저’ ‘금수저’ ‘노답’ ‘벌레’ ‘○○충’, 그리고 이번 생生은 망했다는 뜻의 ‘이생망’까지, 모두 요즘 청년들의 원망이나 좌절을 담고 있는 부정적인 단어들이다.

희망은 내가 지금 한 단계를 밟고 있고, 더 많이 노력하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할 때 갖게 된다. 그런데 이 ‘다음 단계’가 보이지 않거나, 다음 단계로 나아가면 상황이 더 나빠질 뿐이라고 느낄 때 사람들은 좌절하고 절망한다. 청년들은 자신의 노력이나 능력보다 부모의 지위가 미래를 결정짓고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답이 없는 상태라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있다. 청년들이 ‘이 땅에서 삶에 희망이 있을까?’라고 품는 의문, 나아가 이 사회에 희망이 없다는 판단을 내리기 시작했다는 인식은 바로 그 신조어 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

지난 금요일, 평택역 광장에서 ‘박근혜 퇴진’ 평택시민촛불 문화제가 있었다. 그곳에는 300여명이 넘는 평택시민들이 모였고, 선출되지도 않은 일반인이 대통령을 대신해서 국가를 맘대로 주물렀다는 것에 분노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모인 사람들 대부분이 ‘분노한’ 학생들과 청년들이었다는 점이다. 청년들에게 누구도 감히 ‘희망’이라는 말을 섣불리 던질 수 없는 암담한 상황에서 이렇게 자발적으로 모여든 청년들을 보는 것은 기성세대로서 뭔가 모를 희열이 느껴지기도 했다.

청년들이 ‘분노’를 자발적으로 표출할 수 있다는 건 사회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여태 청년들의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은 지금과 달랐기 때문이다. 그동안 대부분의 청년들은 분노를 ‘혐오’ 또는 ‘체념’으로 표현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그냥 ‘싫다’고 말하면서 이 땅을 떠나는 경우가 많았다. 청년들에게 ‘분노’는 ‘혐오’가 되었고 서로를 ‘벌레’ ‘○○충’이라 부르면서 비하하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

이것은 ‘헬조선’이라는 과격한 형태의 현실인식과 맞닿아 있다. 요즘 식으로 이 사회를 요약해본다면 ‘벌레들이 살아가는 헬조선’쯤 되겠다. 그런 사회를 살아내는 청년들에게 이번 ‘분노’는 확실히 달랐다. 아니 여태 참아왔던 사회적 분노를 이제야 터트리는 것일 수도 있다. 이날 모인 청년들에게서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분노를 표출하고 싶다’거나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살아보고 싶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청년들의 ‘분노’는 작게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고발이기도 하지만 크게는 망해가는 이 사회를 바로 잡겠다는 정치적 행동이라고 생각된다. 오랫동안 경쟁과 적대의 몸으로 살아야 했던, 공공의 모험이 무엇인지 감을 잡기 어려웠던 청년들에게 어쩌면 이번 ‘분노’가 기적적인 삶의 전환, 즉 ‘박근혜 퇴진’이라는 정치의 장을 만들어낼 수도 있을지 모른다. 정치적 장은 혼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삶과 인격을 공공영역의 모험 속으로 던질 때 비로소 얻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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