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중·고등학생들이
광장에서 촛불을 밝히고 있다.
‘민주주의’ ‘정의’ ‘진리’가
교과서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촛불을 통해 밝히고 있는 것이다

 

▲ 김벼리
현화고등학교 3학년

얼마 전 대학 면접 준비를 위해 우리사회에 유행어처럼 쓰이는 ‘헬조선’, ‘흙수저’라는 표현이 왜 만들어 졌나 생각해보았다. ‘헬조선’은 나의 나라를, ‘흙수저’는 부모를 원망하는 표현이다. 즉 출신을 원망하는 단어라고 볼 수 있다. 소득과 의료·교육에서 불평등을 느끼고 아무리 노력해도 계층이동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회에 사는 청년들이 분노를 넘어 ‘헬조선’과 ‘흙수저’라는 자조 섞인 용어로 자신들의 처지를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방안은 국회가 부의 재분배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관련 법안을 만들고 제도적으로 보완해나가는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결국 빈부격차라는 불평등을 해결해나갈 주체는 정부가 되어야한다.

지난 6월에 있었던 ‘깔창 생리대’ 사건을 모두 기억할 것이다. 저소득층 소녀들이 생리대 살 돈조차 없어 신발 깔창에 휴지를 대서 쓴다는 안타까운 일이다.

국내 저소득층 가정의 여학생이 약 10만 명에 달하는 것을 감안한다면 지금도 수많은 학생들이 생리대 구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이다. 초기에 이 사건이 문제가 되었을 때만 해도 당장이라도 해결이 될 것만 같았는데 정부는 내년 예산안에 저소득층 청소년 생리대 지원예산을 넣지도 않았다.

반면, 언론 보도에 따르면 최순실과 차은택이 기획한 문화융성 사업에는 270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다고 한다.

830명이 훨씬 넘는 학생들이 당장 내년부터 깔창생리대를 다시 쓰게 생겼는데 문화를 융성하겠다니, 게다가 생리대 살 돈이 없어 도움을 요청하는 친구들에게는 절차와 과정을 그렇게 중시하며 지원을 미루면서 대통령 ‘측근’들에게는 최소한의 절차마저 과감히 생략되었던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복지국가를 만들어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겠다던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4년 동안 ‘그들’만의 복지국가를 만들어 ‘그들’만 행복한 나라에서 살았던 것이다.

수능이 열흘 남짓 남았다. 나의 친구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각자의 꿈을 안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사실, 우리에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복잡한 인물관계나 거국중립내각이니 조기 대선론이니 하는 것들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피부로 와 닿는 것은, “역시 노력해도 안되는 게 있구나. 이제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없는 말이 되었으며 우리가 12년 동안 치열하게 공부하고 경쟁해서 간신히 얻을까 말까 하는 것들을 어떤 이들은 돈과 권력을 통해 손쉽게 얻는구나”라는 주위 친구들의 말이다.

이 사태의 주요 악인은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그리고 ‘그의 일당들’이 확실하다. 그러나 언론도, 우리들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언론은 ‘정윤회 문건유출 사건’ 때 왜 미리 알아내지 못한 걸까? 알아냈다면 왜 보도하지 않은 걸까? 적지 않은 폭로성 발언들이 있었는데 왜 더 자세히 취재하고 보도하지 않았던 걸까? 그리고 우리는? 끈질기게 관심 갖고 진실을 촉구해 왔는가?

언론은 용기가 부족했고, 우리들도 마찬가지로 관심과 용기가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그러나 현재는 다르다. 이제라도 알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말하고 싶다. 수많은 중·고등학생들이 광장에서 촛불을 밝히고 있다.

‘민주주의’ ‘정의’ ‘진리’가 교과서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촛불을 통해 밝히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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