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다른 상대라 해도
존중해준 그 정신이 있다.
그게 바로 우리의 저력이다.
구겨진 종이가 휴지통으로 갈지
아니면 더 멀리 날아갈 지는
이제부터 우리하기 나름이다

 

 
▲ 이수연 전 부이사장
한국사진작가협회

심기일전 한다는 새해를 맞이했지만 잔뜩 구겨진 마음은 아직 그대로다. ‘이게 나라냐’는 구호에 공분公憤하면서 내 마음이 구겨진 것을 새삼 깨달은 이후 나라 안 어느 한구석 제대로 시원하게 풀리는 곳이 없다는 사실에 더 울화가 치민다.

조류독감에 계란 대란을 거쳐서 블랙리스트가 아니라 특혜추천 명단이라는 화이트리스트까지 등장하고 보면 이 분노는 ‘정치’ 쪽으로 향한다. 민심이야 어떻든 국민들이 횃불로 얻어낸 희망의 싹을 정치적 전리품쯤으로 여기듯 하는 행태나, 책임을 전가하고 이합집산 제 살길만 찾는 모양새를 보면 아예 그쪽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고 싶다.

백성은 나라님을 세우기도 하지만 분노하면 그를 엎어버리기도 한다는 ‘군주민수君主民水’가 교수들이 선정한 지난 해 사자성어라고 하는데 정작 국태민안 대신 ‘대권우선’ 밖에 없는 그들은 그걸 알기나 하는 걸까.   

인간이 비극적 상황에 직면하면 모든 걸 포기하고 투항하는 현상을 사회심리학에서는 ‘정신적 마비 Psychic Numbing’라고 한단다. 수많은 희생자를 낸 중동 어느 나라의 내전소식이나 지진 참화 같은 결과에 직접적 연관이 없는 우리들은 ‘그러려니’ 하며 받아들이는 것을 말하는데 ‘작게 생각하기 Think Small’를 하면 그렇지 않단다. 싱크 스몰을 굳이 의역하자면 ‘남의 일 같지 않다’ 또는 ‘역지사지’ 쯤 될까. 이화여대 입시비리에 터져 버린 분노처럼 말이다.

미얀마의 어느 군부 독재자가 점성술사의 말을 듣고 국민들 몰래 전격적으로 수도를 옮겼다는 이야기. 또 브라질 어느 대통령이 비리로 탄핵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땠는가. 실소를 금치 못했거나 무덤덤했다. 그러나 막상 남의 이야기 같지 않은 사태가 우리한테서 발생하자 분위기가 급변했다. 남의 일 같지 않아서다.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는 말도 있을 수 있는 표현쯤으로 여겼는데 그게 신기神氣 있는 어떤 여자의 대필인 것 같다는 말에 ‘헉’ 소리를 절로 냈다.         

만신창이가 된 이 마음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구겨진 종이가 더 멀리 날아간다’는 말이 조금은 위안이 되려나. 몇 년 전 드라마 ‘광고천재 이태백’에 나온 대사다. 돈 없고 빽 없고 스펙 없는, 소위 흙 수저 주인공이 금 수저 상관으로부터 ‘삐딱한 마음의 주름을 펴야 구겨진 인생도 펴진다’며 모욕적 힐난을 들었을 때 불쑥 내 던진 말이다.

드라마의 실제 주인공 이제석의 성공은 극적이기까지 하다. 개인적으로는 벽에 붙이는 포스터를 전봇대용으로 만든 이라크 반전 포스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상대를 향한 긴 총부리가 전봇대를 한 바퀴 돌자 바로 자기 뒤통수를 겨누는 그 장면 말이다. 그 성공의 근간은 바로 반전反轉, 역지사지, 거꾸로 생각하기다.

이 거꾸로 생각하기는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꾸기도 한다. 빈 담뱃갑 속 구겨진 은박지를 소중하게 펴서 곱게 접던 종이학처럼 말이다. 아무리 곱고 예쁜 색종이라도 구기지 않으면 쓸모가 없다. 어쩌다가 잘못접어 이리저리 다시 접는 동안 종이에 어지러운 금이 생겨 못 쓸 것 같은 지경이 돼도 버리지 않고 기어이 예쁜 모양으로 접어내던 우리들이다.

구겨진 국격國格? 구겨진 자존심? 비관하고 포기만 할 수는 없다. 찬성이든 반대든 횃불이든 태극기든 천 만의 우리 국민들은 그 시위현장을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문화로 승화시켰다. 우리나라를 국제적 조롱거리에서 단박에 세계인들의 눈을 휘둥그레 하도록 만든 그 바탕에는 ‘판을 깨면 안 된다’며 생각이 다른 상대라 해도 존중해준 그 정신이 있다. 그게 바로 우리의 저력이다. 구겨진 종이가 휴지통으로 갈지 아니면 더 멀리 날아갈 지는 이제부터 우리하기 나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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