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점장사 15년, 손님 모두가 내 가족들이에요”

 
“아줌마 오뎅 국물 좀 먹고 갈게요.”
유난히 추위가 심했던 지난 목요일 오후, 삼삼오오 떼를 지어 귀가하던 초등학생들이 스스럼없이 호떡과 어묵을 파는 아주머니네 포장마차 안에 들어와 어묵 국물을 떠먹는다. 어묵 하나 사먹지 않고 국물만 떠먹겠다는 아이들에게 아주머니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빈 종이컵을 나눠주며 뜨거우니까 조심히 먹으라는 말만 되풀이 한다. 다른 곳에서는 눈치를 주는 것이 일반적이라 그 풍경이 왠지 낯설게 느껴진다.
“아이들이 사 먹지는 않고 국물만 마시고 가네요. 요즘 아이들은 눈치가 빨라서 싫어하는 거 알면 절대 저렇게 안할 텐데….”
의아해 하는 기자의 말에 되돌아온 아주머니 대답이 지극히 간단명료해 또 한 번 기자를 당황케 만든다.
“먹고 싶어 하니까요. 날씨가 워낙 춥잖아요.”
아이들의 행동이 스스럼없는 걸 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익숙해진 모습이다. 기자가 미리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아주머니는 지나가는 노인이나 노숙인들 에게도 들어와 뜨거운 국물을 마시고 가라거나 배고픈 사람들이 지나가면 갓 구운 뜨거운 호떡을 나눠준다고 했다. 기자가 입수한 정보가 사실임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셈이다.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을 거라 기대했던 기자는 아주머니의 간단한 대답에 허탈해지기도 했지만 일순간 그게 정답이다 싶다. 춥고 배고픈 사람에게 음식을 나눠주는 그 마음 외에 다른 무엇이 또 있으랴.
마침 지나가다 아주머니와 딸로 보이는 여인들이 아주머니에게 웃으며 말을 던진다.
“신문이랑 폐지 많이 모아놨으니 이따 와서 가져가세요.”
폐지도 모으느냐는 기자의 말에 아주머니는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폐지를 모으러 다니는 게 아니라 이웃들이 알아서 폐지를 모아준다는 말을 들려준다. 폐지를 일주일 동안 모아 팔면 3만 원 정도는 받을 수 있는데 작은 돈이지만 아주머니에게는 반찬거리 값으로 사용할 수 있어 도움이 된단다.
사실 아주머니는 벌써 15년째 분식가게와 붕어빵, 호떡집 등을 운영해 온 베테랑이다. 오래전 다리를 다쳐 장애인으로 등록된 아저씨도 벌써 12년째 붕어빵과 어묵을 팔고 있는데 얼마 전까지 비전2동 작은도서관(구, 비전2동 주민센터)앞에서 아주머니와 함께 장사를 하다 지금은 불과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각기 따로 장사를 하고 있다.
“실은 제가 당뇨도 심하고 갑상선도 있고 해서 몸이 많이 안 좋아요. 그래서 오랜 시간 일을 할 수 없어요. 그래도 집 월세내고 제 병원비에 아파트 관리비, 전기세 등을 내고 살아가려면 돈이 필요하잖아요. 더 아프기 전에 한 푼이라도 벌어야죠. 그래도 다행인건 하나뿐인 아들이 대학교에서 장학금을 받아 등록금 걱정은 안 해도 된다는 거예요. 아들이 얼른 돈 벌어서 저 고생 안 시키겠다니, 제 아들 녀석 참 기특하죠?”
말주변이 없다는 아주머니와 한 시간 가량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아주머니는 어느새 기자가 편한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제가 어린 시절 부모 없이 자랐던 게 제 탓은 아니잖아요. 비록 어린 시절 어렵게 자랐지만 지금은 든든한 남편도 있고 엄마를 제일 좋아하는 아들도 있으니 저 이만하면 괜찮죠?”
환하게 웃는 아주머니를 보자 이내 마음이 따뜻해진다. 지나가는 배고픈 사람에게도 뜨거운 먹을거리와 함께 늘 저런 미소까지 한 아름 덤으로 안겨주었으리라.
아주머니는 현재 왕호떡 체인점을 운영하고 있지만 내년에는 직접 재료를 만들어 볼 생각이란다. 오전 10시 정도에 시작해 늦은 저녁까지 밥도 제대로 못 챙겨먹고 일하고 있지만 가족처럼 따뜻하게 맞아주는 이웃과 스스럼없이 들어와 재잘거리는 아이들, 그리고 무엇보다 남편과 대학 졸업하면 가게를 차려주겠다는 믿음직한 아들이 곁에 있기 때문에 아주머니는 오늘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
“재료값이 많이 오르긴 했지만 동네에서 장사하니까 가격을 올릴 수가 없어요. 왜 그냥 나눠 주냐구요? 그건 별거 아니예요. 제 자신이 어릴 때 소풍가면 먹고 싶은 걸 다 못 먹었던 시절이 있었으니까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먹고 싶은 사람에게는 호떡 하나, 오뎅 국물 한 컵 나눠주는 게 다 인걸요.”
호떡 몇 개를 사서 돌아서려는 기자에게 아주머니가 한사코 귤 2개를 손에 쥐어준다. 기온이 갑자기 떨어진데다 문도 없는 포장마차였는데도 추운 줄 몰랐던 건 그 안의 온기 때문이 아니라 아주머니의 따뜻한 마음이 차가운 기온과 얼어붙은 사람들의 마음까지 모두 녹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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