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의식을 가진 같은 평택사람으로
기지주변 사람과 생활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나 폐해,
무엇보다도 반미정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공감했다

 

▲ 권혁재 시인

지난 4월 26일 말 많던 사드가 결국 기습적으로 성주군에 배치됐다. 문제는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의 공백과 어떤 환경영향평가도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강제로 집행되었다는 것이다. 한 해 미군 방위비 분담금이 9400억 원 수준인데, 사드가 배치되고 트럼프가 주장한 대로 주한미군 방위비를 100% 인상할 경우 차후 방위비 분담금은 1조 9000억 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 시점에서 현실적으로 제기되는 문제점이 몇 가지 있다. 우선 한국지형에 과연 사드가 적합한지, 적합하다면 그 주요상대국은 어디인지, 또 사드를 가동할 경우 전자파가 주변에 미치는 환경평가 등 이러한 모든 핵심사항을 국회에서 충분히 논의가 되었거나 검증절차가 있었는가 하는 궁금증이 앞선다.

용산 미군기지가 올해 2월부터 선발대를 시작해 2020년까지 점차 확대하여 평택으로 완전히 이주할 예정이다. 인구 48만 명의 평택은 경기도 최남단에 자리한 중소도시다. 여기에다 주한미군기지가 확장되고 새로운 주둔군들이 유입된다면 빈번한 범죄 발생률과 환경파괴는 불을 보듯 뻔하다. 미군이 기지화한 곳은 언제나 범죄나 환경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굳이 예를 들지 않더라도 ‘SOFA 주한미군주둔군지위협정’을 빌미로 삼아 얼마나 많은 범법과 범죄가 용인되고 자행되어 왔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일찍이 박석수 시인은 “고향에 가면,/이제는 하북 냇가까지/그들의 정액이 흐르고 있네”(하북 냇가-쑥고개·40)라며 지적했다. 미래를 내다본 그의 혜안은 기지주변에서 맞닥뜨린 자전적 체험을 시나 소설로 잘 드러냈다. 그가 보여준 일련의 행위는 단순히 개인의 아픔이 아닌 고향인 송탄의 아픔이자 나아가서는 힘없는 국가에 닿아 있다. 다시 말해서 개인의 심급보다는 민족의 심급에 닿아 있다 하겠다.

같은 평택에 살면서 박석수 시인에 대해 알고 있거나 이름을 들어 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좀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필자도 박석수 시인을 알게 된 게 오래되지 않는다. 1990년대 말 대학원을 다닐 때 담당선생님의 연구실에서 선생님을 기다리며 책장에 꽂힌 책들을 살펴보다가 눈에 확 끌린 것이 시인의 이름보다는 ‘쑥고개’였다. 순간 ‘쑥고개’라는 잠재의식에 깔려 있던 무수한 연상 작용들이 솟구쳐 올라와 융이 말한 공동잠재의식으로 전이되면서 더 필연적으로 시집에 손이 갔는지도 모른다.

기지를 중심으로 하여 그는 쑥고개에서, 필자는 험프리스 후문에서 검은 철조망이 둘러싸인 신작로를 걷기도 했을 것이다. 그의 시집을 숨 가쁘게 읽어 내려가면서 필자가 가진 생각은 우선 코드가 같다는 것이었다. 그 다음으로는 기지주변의 연대의식을 가진 같은 평택사람으로 기지주변의 사람과 생활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나 폐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반미정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공감했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공룡 앞에 맞서는 다윗 같은 작품세계가 때로는 청량감 있게 때로는 비애감을 유발시켰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박석수가 지병으로 사망한 지 21년이 되어서야 그를 기리는 기념사업회가 발족을 한다고 한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기념사업회가 잘 정착하여 사드가 배치된 답답한 국내정세를 조금이라도 밝게 해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박석수의 작품에서 풍기는 반미의식을 통해 패권주의로 무장한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경계심이 재고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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