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중 지음/사계절

 

 
▲ 이수경 사서
평택시립 장당도서관

아침에 깨자마자 모바일 폰으로 세상을 검색합니다. 사건, 사고로 가득한 아침 뉴스는 심장에 무리가 간다는 말도 있습니다만 미디어와 통신 발달로 생중계 되다시피 하니 비극성과 고통은 더욱 커집니다. 최근 일어나는 범죄나 국가적 차원의 사건들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보통 악(惡)이라 할 때 개인 범죄와 시스템(국가, 체제)차원에서 벌어집니다. 지은이는 젊은 시절 “세상의 규칙 같은 것은 발톱의 때만큼으로도 여기지 않고 계율과 도덕 따위는 개에게나 던져주라는 듯, 신에게까지 굳이 도전하는 악, 이를 몸소 체현한 악인은… 위선자보다… 소인배보다… 매력적”이었다며 “60대 중반이 되어서야 악이 사람 안에 둥지를 틀고 마치 병원균처럼 마음을 좀먹는 일, 즉 악의 연쇄라는 것에 맞닥뜨렸”다며 “악, 그리고… 악인은… 진부하고 초라하며, 악은 ‘텅 빈 것’이 아닌가?”라고 고백합니다.

강상중은 일본에서 일어난 잔인한 범죄 사례와 금융 자본주의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악의 연쇄를 말합니다. 이는 영국 문학평론가 테리 이글턴이 <악: 우리 시대의 악과 악한 존재들>에서 제기한 “연쇄 살인마의 순수한 악은 핵무기를 쓰자는 평범한 악보다 특별할까?”라는 질문과 통합니다. 강상중은 악이 ‘삶의 공허함’, ‘관계와 신체성의 결여’에서 나온다는 것을 문학, 역사적 사건, 종교 등을 넘나들며 증명하고 있습니다. 공허한 텅 빈 마음, 세상과 연결점이 약해진 순간 인간의 마음에 깃드는 ‘악’은 인간은 결코 고립되어 살 수 없는 존재임을 이야기합니다.

악과 마주하여 이겨내는 방법으로 “용서할 수 없다”라는 부정적인 감정의 연대와 공감을 이야기하는데, 우리의 촛불집회를 사례로 제시합니다. ‘악’을 줄이는 세 요소로 “사람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하는 보장保障과 보안에 관련된 ‘안전’, 사회의 공정함을 말하는 ‘정의’, 그리고 ‘자유’, 이것들의 비율이 어떻게 변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은 ‘생의 충동’과 ‘죽음의 충동’을 오간다”고 합니다. 물론 책을 다 읽어도 세상에서 일어나는 ‘악’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어쩌면 더 많은 질문이 생길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테리 이글턴의 말처럼 특정 범행이나 시스템 폭력을 ‘악’이라고 이름 붙여 논의와 협상의 가능성을 봉쇄하여 교묘히 은폐하지 않도록 “용서할 수 없다”는 연대와 공감으로 “관계를 결여한 병인 ‘악’과 대면”해야 할 것입니다. 그 길은 얼마나 험난할까요? 악이 공허와 허무에서 생겨난다고 했는데 “사람에게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공허함과 허무함이 있”기에 크나큰 ‘악’의 연쇄에 좌절할 수도 있습니다. “악에 현혹되지 않으면서 자기 안의 부정적인 감정을 긍정적인 것으로 바꿔 서로의 자유를 해치지 않고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끊임없이 찾는 것,” 이것이 악의 시대를 건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힘이 아닐까요? 세상에 만연한 악, 배신, 불신에도 옆 사람과 잡은 신뢰와 사랑의 손길을 거두지 않는 건강한 마음, 그 힘을 믿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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