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린내 풍기는
도축장으로 옮겨 가는
공간의 여정만으로도
자본주의 광기와 그에 대한
감독의 혐오가
뼈저리게 느껴진다

 

   
▲ 김기홍 부소장
평택비정규노동센터

봉준호 감독과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기업인 넷플렉스의 만남으로 화제를 모은 영화 ‘옥자’가 지난 6월 29일 넷플렉스와 극장에서 동시에 공개됐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중 제일 많은 5000만 달러, 한화 약 565억 원의 제작비를 들인데다 틸다 스윈튼, 제이크 질렌탈, 폴 다노 등 할리우드 스타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제작 단계부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더욱이 넷플렉스와의 동시 개봉에 반발한 멀티플렉스 영화관 CGV, 메가박스, 롯데시네마의 상영 거부로 끝내 100여 군데의 단관 영화관에서 개봉돼 더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다국적 기업 ‘미란도 코퍼레이션’은 품종개량을 통해 세계 각지로 슈퍼 돼지를 보내는데, 그중 하나가 ‘옥자’다. 강원도 산골에서 할아버지와 살던 ‘미자’는 옥자와 동고동락하며 우정을 쌓아간다. 10년 뒤 미란도 코퍼레이션이 슈퍼 돼지 콘테스트를 열 계획으로, 옥자를 뉴욕으로 데려가면서 이야기는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간다. 미자와 동물보호단체 ALF(영국에서 만들어져 점조직으로 활동하는 실존하는 조직) 일당이 옥자를 구출하기 위해 서울에서 미국 뉴욕까지 숨 가쁜 추격전을 벌인다. 두메산골의 깊고도 아늑한 계곡에서, 비린내 풍기는 도축장으로 옮겨 가는 이 공간의 여정만으로도 자본주의 광기와 그에 대한 감독의 혐오가 뼈저리게 느껴진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의 메시지는 무척 직선적이다. 유전자 조작 돼지 옥자와 소녀 미자의 모험을 통해 현대 사회의 육식 문화와 공장식 축산을 정면으로 겨냥한다. 평화로운 강원도 산골. 10년째 우정을 나누던 두 소녀 미자와 옥자의 일상을 무참히 깨드린 슈퍼 돼지 사육 프로젝트. 동화 같은 산골 풍경부터 광란의 축제가 벌어지는 뉴욕 도심. 아우슈비츠의 살풍경을 연상케 하는 도축공장을 차례로 거치며 옥자는 동물이 아닌 ‘가격표 붙은 고기’로서 여러 수모와 시련을 겪는다. 미란도 코퍼레이션을 비롯한 인간들이 옥자를 대하는 방식은,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기업이 노동자를 상품화 하는 방식과 섬뜩하게 겹친다.

봉준호 감독은 옥자의 수난극을 통해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톱니바퀴처럼 길들여지고 착취당하는 인간 군상을 흥미로운 비유로 확장한다. 동전 한 닢에도 전전긍긍하는 미자의 할아버지, 맹목적으로 회사에 헌신하는 ‘문도’가 그 좋은 예이다. 회사의 손해 따위는 나 몰라라 하는 하청업체 운전수 ‘최우식’ 같은 부류도 있다. 4대 보험도 들어주지 않고 언제 계약이 끝날지도 모르는 비정규직인 그에게 있어 회사에 대한 충성심을 들이 대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한 요구이다.

영화의 클라이맥스, 옥자를 구할 방법이 없음을 안 미자는 미란도 코퍼레이션의 CEO인 ‘루시’의 쌍둥이 언니 ‘낸시’(틸다 스윈튼이 ‘루시’와 ‘낸시’를 1인 2역으로 연기해 내는 장면도 흥미 있는 대목)에게 ‘옥자’를 10년간 키워 받은 대가로 만든 자신의 금돼지를 옥자의 몸값으로 넘긴다. 루시라면 단칼에 거절했을 미자의 제안을, 놀랍게도 낸시는 아주 ‘쿨 하게’ 받아들인다. 추정컨대 낸시는 옥자와 금돼지의 등가교환을 인정했다기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질가치로 오가는 거래 자체의 아름다움과 상징성을 높이 사지 않았을까.

자본의 횡포에 맞서 시작한 저항은 아이러니하게 결국 가장 자본주의다운 방식으로 끝을 맺는다. 봉준호 감독은 이토록 김빠지고 황당한 결말을 태연하게 그린다. 물론 미자와 옥자는 고향 강원도로 돌아와 평화로운 일상을 맞이한다. 하지만 이 풍경은 사회의 하층부에 위치한 개인들이 길고 끔찍한 소송 기간을 거쳐 얻어낸, 불편하고 상처뿐인 승리에 가깝다. ‘옥자’는 자본주의 세상의 비정한 이치를 혹독하게 겪는 두 산골 소녀의 쓸쓸한 성장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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