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7월 22일

1938년 일본인 중심 분회 조직
베개·털개 각 100개 제작 헌납


 

 

 

“조수처럼 밀려드는 조선군애국부(軍愛國部)의 헌금헌납부 대중에 또 하나의 감명 깊은 선물이 피력되었다. 二十二일 석양 군애국부를 방문한 경기도 평택(平澤)군의 대일본부인회 평택지부장 가네마쓰 유키꼬(金松由紀者) 여사 등 五명의 부인회 회원은 (중략) 정성껏 만든 ‘배게’ 백 개와 그리고 ‘털 개’ 백 개를 헌납하는 수속을 하였는데, (중략) 앞으로도 더욱 이러한 총후부인들의 마땅히 행할 일에 적극적으로 행하기로 되었다 한다.”(『매일신보』 1944년 7월 25일)

일제강점기 말기는 이른바 ‘전시체제기’라고 한다. 1931년부터 시작된 전쟁은 해방되는 1945년 8월 15일까지 지속되었다. 이 전시체제기는 그야말로 통제와 강압의 시기였다. 일반적인 행정이라고 하지만 그 이면에는 강제성이 내포되었다. 그렇지만 일본인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이들은 자발성이 더 우선시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전시체제기 일본인의 활동은 ‘총후활동·銃後活動’이었다.

평택도 일본인이 많이 정착했던 관계로 전시체제기 일본인의 총후활동이 두드러졌다. 대표적인 활동은 ‘(일본)애국부인회 평택분회’의 활동이었다. 애국부인회는 일본에서 조직되었는데, 1910년 8월 29일 일제에 강점당하자 1911년 2월 군사원호를 목적으로 ‘애국부인회 조선본부’가 조직되었다. 처음에는 일본인 여성만 가입할 수 있었지만 점차 조선인 여성들도 참여시켰다.

애국부인회는 군사후원 활동 이외에 군인 유가족 후원, 사회사업 등의 활동도 하였으며, 지방에 분회(지부)를 설치하였다. 평택에도 1938년 10월 22일 애국부인회 분회가 조직되었다. 분회 창립 당시 600여 명이 참석할 정도로 규모가 제법 컸음을 알 수 있다. 두드러진 활동은 없었지만 1944년 7월 22일 ‘화제 꺼리’를 제공하였다. 바로 베개와 털개를 만들어 조선군사령부 애국부에 헌납한 것인데, 일본군에게는 ‘감명 깊은 위문품’이었다.

평택분회장은 가네마쓰(金松) 군수의 부인 가네마쓰 유키코가 맡고 있었는데, 자신의 집에서 회원들을 모아 저고리 소매를 짧게 하고 옷고름 대신 단추를 달게 하여 남은 천으로 베개와 털개 각각 100개를 만들었다. 이를 무더위를 무릅쓰고 서울 용산에 있는 조선군사령부를 찾아 헌납하였다. 매우 특이한 사례라 하여 『매일신보』는 이를 선전하기 위해 기사로 게재한 것이다. 유키코는 회원 5명은 “이것은 비록 적은 것이오나 다시 봉공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용기를 돋우고 있는 우리 백의용사들에게 편히 쉬도록 써주십시오”라고 헌납하였다. 일본인으로서는 정성을 다하는 일이었을지 모르나, 식민지 조선인으로서는 불편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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