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 브라운 / 문학수첩

 

 

▲ 윤지수 사서
평택시립 진위도서관

댄 브라운의 신작 출시 소식에 애타게 기다려 도착하자마자 단숨에 읽어버렸다. 다빈치코드, 천사와 악마, 인페르노까지 모두 실망시킨 적이 없는 흥미진진한 소설 중의 하나로 기억한다.

처음에는 영화로 접하게 됐지만, 영화를 본 후 글로 읽다보면 영화보다 몇 배 더 풍부한 상상력으로 그 장면들이 다가온다. 이번 소설, 오리진을 읽으면서도 내가 스페인에 와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바르셀로나 전역을 누비며 주인공과 함께 직접 답을 찾아 나서는 기분으로 같이 긴장하고, 같이 두근거리게 된다. 이번 시리즈는 댄 브라운의 소설 중 가장 종교와 떨어져있는 주제이지만 또 다르게 생각한다면 가장 근접한 주제라고 생각한다. 신과 과학 사이에서 질문을 던지고 그 해답을 찾아나가는 과정 또한 흥미진진하다. 이전에는 로마의 아름다운 조각상들을 관람하는 느낌이었다면 이번에는 스페인의 건축물에 빠져들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됐다. 그런데 건축물의 아름다움에 빠지다가도 문득 두려워지는 때가 있다. 에드먼드 커시의 말 대로 기술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발전하며 새로운 종이 태어나 진화하고 있고, 시간이 흐른 뒤에는 인간의 존재 자체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게 된다.

이전의 로봇세상을 이야기하는 것과는 달리 더 심각하게,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인공지능이 발전하는 이때, 인간의 편함을 넘어선 진화한 기술로 인해 인간이 소수가 되고 약자가 되는 날이 올 것만 같다. 이론 자체가 거짓이고 성립될 수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이 소설 안에서만큼은 설득 당해버리고 만다. 우리의 두뇌가 따라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우리가 만든 것이지만 그것을 뛰어넘기엔 이미 늦은 때가 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저자는 ‘신’과 ‘과학’을 주제로 질문을 던졌지만 나는 그 ‘과학’에 대해 더욱 많은 생각이 들었다. 에드먼드 커시가 만든 인공지능 ‘윈스턴’을 보며 나도 윈스턴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윈스턴으로 하여금 내가 정말 무능력해지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때가 올 것이라는 확신도 들었다. 멀리 볼 것 없이 지금도 휴대폰 단축번호로 인해 전화번호 11자리도 못 외우는, 외울 필요가 없는 때가 와버렸고, 메신저의 발달로 인해 긴 글을 쓰는 일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그 중간쯤 와있는 상태일 수도 있고, 이미 돌아가기엔 늦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질문보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창조보다는 운명에 따라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있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어떤 세상일지, 인간에게 있어 그 순간은 어떤 순간일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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