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하염없이
눈물 흘리던 해고자들에게
당당한 아빠의 뒷모습을
선물할 수 있길 바란다

 

▲ 임윤경 사무국장
평택평화센터

2월 21일, 오늘 쌍용차 문제 해결을 위한 기자회견에 다녀왔다. 기자회견이 있을 공장 정문에 도착해보니 지역뿐만 아니라 타 지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늘 어려운 곳이 있으면 달려가는 사람들이다. 해고자들의 모습도 보인다. 그들 어깨가 오늘따라 무거워 보였다. 9년이란 시간 동안 짊어졌을 고통의 무게일까. 쳐진 어깨만큼 기자회견은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로 시작됐다.

2009년, 그러니까 지금부터 9년 전. 그 해는 쌍용자동차 대규모 정리해고 사태가 있던 해이다.

그때 나는 둘째를 잃고 몸과 마음이 통째로 흔들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을 때였다. 뉴스에서 들려오는 쌍용차 이야기는 나와 무관한 일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내 머리 속은 오직 슬픔, 원망, 분노 이런 단어들뿐이었다. 그리고 뉴스를 통해 쌍용자동차 굴뚝 농성 소식이 들려왔다. 그때 굴뚝에서 외치는 해고자들의 주장은 ‘함께 살자’였다. 그 뉴스를 보며 멍했던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기자회견은 생각보다 길었다. 쌍용차 문제 해결을 위해 멀리서 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고 발가락 사이로는 냉기가 스며들었다. ‘10년의 고통과 절망, 이제는 끝내야 한다’는 기자회견문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이제는 끝내야 한다. 여기 모인 사람들 염원을 담아 이제 끝내야 한다. 그때 내 앞에 서 있던 사람이 앞으로 성큼 걸어 나갔다. 그리고 마이크를 들었다. 그렇게 마이크를 들고 한참을 서있었다. 발꿈치를 들고 마이크를 든 그를 보았다. 기자회견 전, 어깨가 무거워보였던 그 해고 노동자였다.

마이크를 든 그는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그 뒷모습에서 9년이란 시간 동안 그를 짓눌렀을 고통과 절망이 느껴졌다. “딸아이에게 출근하는 아빠의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그의 소박한 이야기가 더욱 가슴을 아프게 했다. 어려운 상황에서 재취업을 준비했으나 매번 고배를 마셔야 했던 그들, 성실하게 일하고 월급 받아서 가족들과 소박한 일상을 꿈꾸었던 그들, 정리해고는 그들에게 굴뚝에서 86일, 송전탑에서 171일, 또다시 굴뚝에서 101일 그리고 세 번의 단식이라는 혹독한 시간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어느덧 9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그 시간동안 해고자와 그 가족 29명이 우리의 곁을 떠났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한상균 씨의 아내분이 준비한 따뜻한 밥상을 받았다. 이 밥상에 다른 이름을 붙인다면 간절함일 것 같다. 간절함. 국민의 반이 노동자이고 반은 노동자의 가족과 이웃인 우리네의 간절함. 9년간의 기나긴 고통, 이제는 끝내야 한다는 절규가 묻은 간절함. 해고자 복직을 바라는 우리네의 간절함.

차차를 나와 뚜벅뚜벅 걸었다. 벌써 얼음이 녹는 시절인 우수가 지났다. 그러고 보니 녹고 풀려야 할 것은 언 강만이 아닐 것이다. 먼저 우리의 언 손이 녹고 마음이 풀려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를 춥게 했던 모든 사슬들이 빗물처럼 풀려 흐르길. 그 빗물이 해고자들의 복직으로 이어지길. 그리고 오늘 하염없이 눈물 흘리던 그에게 출근하는 당당한 아빠의 뒷모습을 선물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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