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에서 흔히 듣게 되는 말이 바로 ‘성공’입니다. 어떤 사람이 성공했다는 얘기를 들으면 그 사람을 다시 보게 되는데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의 기준은 그의 인품이나 이타적인 행위가 아닌 오로지 ‘직업’인 경우가 많습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 바로 성공한 사람을 결정하는 셈이지요.

아이들에게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훌륭한 사람의 기준은 대부분 사회적으로 번듯한 직업을 갖고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예전에는 의사나 판사, 변호사 등 주로 ‘사’로 끝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훌륭함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곤 했는데 그런 기준은 지금도 크게 변화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학생들이 공부를 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공부는 세상의 이치를 알아가거나 자신이 몰랐던 부분을 배워가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소위 성공한 직업을 갖기 위해서, 또는 사람들이 말하는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문에 공부는 단지 수단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지요. 모르는 것을 알아갈수록 더 큰 세상에 눈을 뜨게 되고 그만큼 생각이 넓어져 인간 삶에 대해서도 큰 비전을 그릴 수 있음에도 학문은 단순히 성공을 위한 도구로 전락해 버리곤 합니다.

성공 또는 훌륭함의 기준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것은 사람들이 미리 재단해 놓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돈’에 의해 결정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한번 밖에 없는 내 인생의 주인이 바로 나 자신이듯이 우리가 쉽게 말하는 성공이나 훌륭함의 기준에 대해서도 한번쯤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요즘 젊은이들에게 가장 되고 싶어 하는 직업을 물어보면 대다수가 ‘공무원’을 꼽습니다. 안정된 직업이라는 것이 그 이유라고 합니다. 그러나 재능을 가진 많은 젊은이들의 선망이 되는 직업을 가진 분들 중 그 안에서 꿈을 꾸고 자부심과 보람을 갖는 공무원은 과연 몇이나 될까요.

문학이나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주로 배고픔을 견뎌야 하는 직업이라는 인식이 팽배한데 요즘은 돈이 있는 사람만 문학이나 예술을 한다는 자조적인 이야기도 많습니다. 그것이 전반적으로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조화를 이루게 한다는 것은 어느새 고리타분한 이야기쯤으로 전락한지 오래입니다.

인재를 육성하는 대학에서는 인문학이 사라졌고 학생들은 오로지 취업이 잘 되는 전공분야에만 몰리는 현상이 두드러집니다. 인간의 삶을 인식하는 기본적인 학문이 인문학임에도 우리의 삶에서는 성공이나 훌륭함이라는 왜곡된 잣대에 의해 뒤로 밀려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꼭 필요한 만큼의 대가가 주어진다는 것을 가정할 때, 내가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직업을 갖는 것, 그 속에서 자부심을 갖고 일을 하는 것, 그 일을 꾸준히 지켜나가는 동안 전문성을 갖게 되는 것, 그것이 나를 벗어나 이타적인 행위로 이어지는 삶이 성공이고 훌륭함의 기준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자신의 위치에서 묵묵히 일하며 자신이 아닌 가족들을 위해 열심인 분들을 보며 문득 생각에 잠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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