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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의 어깨를
다독여 줄 수 있는
후보들이 이번 지방선거에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 김기홍
평택안성지역노동조합 위원장
평택비정규노동센터 집행위원장

보는 내내 눈과 귀, 마음은 좋았다. 영화 속 음식처럼 혓바닥을 자극하는 소금도, 자극적인 조미료도 치지 않아 입안이 평화로웠으며, 오늘날 지친 우리들이 사랑하는 ‘ASMR:정신적인 안정감을 가져다주는 소리를 가리키는 신조어’와 <삼시 세끼>, <효리네 민박> 속 요소들이 아름다운 영상 곳곳에 흐르고 있었다.

눈과 귀의 긴장이 풀린 채 마음이 잔잔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나에게 <리틀 포레스트>는 자기 전 ASMR을 듣는 것처럼 귓가를 포근하게 해주었고, 삼시 세끼, 효리네 민박을 볼 때처럼 아무 생각 없이 영상의 아름다움, 식재료의 싱그러움, 자연과 닿아있는 삶에 넋을 놓게 만들었다.

귓가가 포근했고, 자연과 맞닿은 행복한 삶, 아무 생각 없이 영상의 아름다움, 식재료의 싱그러움에 넋 놓을 수 있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영화였다.

놀고 싶을 때 놀고,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출출할 때 요리해 먹고, 옛 친구들과 늘 함께할 수 있고 사랑스러운 반려동물을 옆에 낀 나날은 도시나 시골이나 행복할 것이다.

임용고시 실패 후 시골로 내려온 주인공 ‘혜원’의 노동은 고모의 농사일을 돕는 게 전부다. 나머지 시간은 밭에서 따온 식재료를 가지고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만들고, 문밖을 내다보며 생각에 잠기고, 계절 내음을 맡고, 옛 친구들과 만나 마음을 나누며 보낸다.

영화 속 세 명의 인물은 우리 시대의 지치고 아픈 청춘들이다. 흔히 회자되고 있는 ‘헬 조선’에 사는 청년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들에게는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는 곳’ 이 있다는 것. 이들이 ‘돌아갈 수 있는 곳’에는 좋은 집도, 자급자족할 수 있는 땅도, 혹은 새로운 일을 시작해 볼 수 있는 밑천도 존재한다. 따라서 영화 타이틀이 이야기하듯 “잠시 쉬어가도 괜찮아”라는 말을 쉽게 할 수 있다. 아니, 사실 쉬다 가지 않아도 괜찮다. 마음만 먹으면 모든 것이 준비된 이곳에서 쭉 살아도 된다. 영화 속 ‘혜원’과 ‘재하’처럼.

그래서 <리틀 포레스트>는 아름다운 판타지 영화, 혹은 영화화된 ‘힐링 예능’ 같다.

귓가를 관통하는 티 없이 맑은소리와 자연과 보색을 이루는 옷가지들이 만들어낸 영상의 아름다움은 원초적 감정과 감각을 건드려 안정감을 주었다. 하지만 영화 줄거리에서 내밀었던 ‘시험, 연애, 취업…… 뭐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 일상에 지친 청춘을 위로’라는 메시지는 와 닿지 않았다. 오히려, ‘자연과 하나 되는 삶’, ‘자연과 하나 되는 삶의 행복’을 타이틀로 가져가는 게 더 맞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후자의 메시지는 잘 전달되었지만, 전자의 메시지는 공허한 울림이 되었다. ‘다 내려놓고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 이미 다른 세상사람 같았으니. 그래서 영화관 안에서는 마음이 평온해 질지라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영화관을 나가는 순간 “나도 저렇게 모든 게 준비된 곳이 있으면 이미 갔지……”하는 짧은 불평이 이 땅에 사는 대부분의 청춘들에게는 자연스럽게 새어 나올 수밖에 없다.

아마도 이 땅의 청춘들에게 정말 필요한 건 ‘쉬어도 된다’라는 메시지 이전에 ‘쉬어도 괜찮은’ 사회인 것 같다. 알바를 하면서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어야 하니 좋은 스펙을 쌓을 수 없고, 졸업 후에는 학자금 대출 이자를 갚느라 연애도 결혼도 포기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쉬어도 된다’는 메시지는 여전히 공허하다.

우리 청춘들에게 ‘좀 쉬어도 괜찮아’라고 어깨를 다독여 주는 사회. ‘청년 수당 신설’, ‘기본소득 실시’, ‘청년 정책국 신설’ 등을 주장하는 후보들이 이번 지자체 선거에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것이 진정 청춘들에게는 ‘리틀 포레스트’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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