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11월 5일

한강에서 유서를 남기고 투신
봉투에서 주소와 이름만 확인

 

 

“작 오일 오전 두 시경에 한강 인도교(漢江 人道橋)에 청춘남녀가 나아가 서로 껴안고 투신하여 정사하였는데, 그 청춘남녀는 오일 오전 한 시경에 한강통(漢江通) 십오번지 삼복(三服)이라는 요릿집에 가서 술을 마신 후 그 요릿집에서 필묵을 얻어 진위군 현덕면 화양리(振威郡 玄德面 華陽里) 류재순(劉載順)에게 가는 한 장의 유서를 써서 품에 안고 가서 그와 같이 정사한 것이라는 바, 그 유서를 누구인지 빼어 가버리고 다만 봉투만 남아서 정사한 원인은 알 수 없으나 봉투만이 한강교 가운데(漢江橋 正中) 류재헌(劉載憲)이라 한 것을 보면 그 남자는 류재헌인 것이 확실하다는데, 남자는 이십사오세 가량이요, 여자는 십팔구세의 미인이라는 바, 시체는 경성부에 인도하였다고 한다.”(『시대일보』 1925년 11월 6일)

‘동반자살’은 ‘누군가와 함께 목숨을 끊음’이라고 해석된다. 혼자 목숨을 끊는 것보다는 동반자와 저승에서라도 함께 있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없지 않았을 터다. 동반자살은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집단으로 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랑하는 연인들이 주로 선택하는 삶의 마지막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동반자살로 유명한 사건은 ‘윤심덕과 김우진’의 현해탄 동반자살이다. 평택에서도 윤심덕 정도는 아니지만 사랑하는 남녀의 동반자살 사건이 있었다.

1925년 11월 5일 새벽 2시경 한강 인도교에서 두 남녀가 동반자살 했다. 한강 인도교는 예나 지금이나 ‘자살 명소(?)’로 알려진 셈이다. 두 남녀는 전날 9월 4일 저녁 한강통에 있는 ‘삼복 三服’이라는 요릿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상심과 좌절로 고민을 하던 두 남녀는 식당에서 필기구를 빌려 유서를 작성했다. 유서를 가슴에 품고 한강 인도교로 간 두 남녀는 서로 껴안고 한강으로 뛰어들었다.

이들 두 남녀는 자살하기 전 유서를 남겨두었는데, 그 유서를 누군가 가져가 버렸다. 내용을 알 수 없지만 남겨진 봉투에는 ‘진위군 현덕면 화양리 류재균’ 이라는 주소가 남겨져 있었다. 진위군 현덕면 화양리는 현재 평택시 현덕면 화양리와 안중읍 현화리 일부지역이다. 이를 근거로 확인한 결과 남자는 류재헌이었다. 이들 두 남녀가 동반자살을 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류재헌은 24~25세고 여자는 18~19세 정도였다. 아마도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었을까 추정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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