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의 변화는
미군위안부 지원조례
제정으로부터
시작한다

 

 
▲ 이은우 이사장
평택시민재단

배꽃음악회 때 임봄 시인이 낭독한 도종환 님의 시 ‘사연’을 들으며 우리들 이야기라며 마음 아파하던 기지촌 할머니가 생각난다. 모진 상처를 견디며 살았던 삶, 지금도 과거를 떠올리는 것이 두려운 미군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이 그 많은 사연을 저 혼자 노을 속으로 가지고 가며 우리 옆에 살고 있는 것이다.

평택지역은 역사적으로 외세로 인해 민중의 고통과 피해가 잦았던 지역이다. 청일 전쟁의 격전지였으며, 일제 강점기에는 수많은 사람이 강제노역으로 끌려가고, 수탈을 당한 지역이기도 하다.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에는 미군 부대가 주둔하면서 많은 평택사람이 미군과 관련된 일로 먹고살았으며, 한편으로는 국가의 관리 하에 기지촌이 형성되고 수많은 여성의 아픔과 회한이 서려 있는 땅이기도 하다.

가난했던 시절, 여성들을 기지촌으로 내몰아 미군 상대로 달러벌이에 나서게 했던 한국정부에 대해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2월 8일 의미 있는 판결을 내렸다. 국가의 불법적인 기지촌 조성과 운영·관리, 조직적·폭력적 성병관리, 성매매 정당화 조장 등의 책임을 인정하고 미군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에게 배상하라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경제와 안보를 담보로 중앙정부의 지시를 받고 불법과 반인권 행위를 조장, 유지, 묵인, 방조한 지자체도 책임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지금이라도 그녀들에게 평화와 인권을 위한 일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지역사회에 깨닫게 해 주고 있다.

미군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은 지금 대부분 70~80대로 고령이고 사회적 멸시 등으로 인해 가족관계 단절이 많다. 지역사회에서도 차별과 소외가 존재하면서 정신적, 신체적, 경제적으로 아픔과 어려움이 이어지고 있다. 기지촌 할머니 지원 단체의 조사결과를 보면 현재 평택에는 미군기지 주변에 120여명의 할머니들이 남아 고단한 삶을 사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미군기지가 평택으로 이전하며 오르는 집세를 감당하지 못해 삶의 터전을 잃고 쪽방으로 밀려난 할머니들, ‘병 덩어리’ 몸과 가난, 끔찍한 낙인의 고통 속에서 평생을 살아낸 고령의 기지촌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남은 인생은 얼마나 될까? 남아 있는 삶 동안 가족과 지역사회와 화해를 도모하고, 행복하게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기지촌에서 나오는 달러, 물자 등으로 먹고 살았던 평택은 지금이라도 그녀들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줘야 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다행히 많은 시민이 미군 기지촌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두고 ‘인권회복과 지원체계 마련을 위한 조례 제정운동’에 나서고 있고, 평택시장 선거에 출마한 정장선, 공재광 후보와 상당수 시의원 후보들도 ‘평택시 미군 위안부 지원 조례 제정’에 적극 찬성 입장을 밝히고 있다. 지방선거 직후에 평택의 변화를 보여주도록 우선적으로 조례제정에 앞장서길 희망한다.

대다수 주한미군들이 평택미군기지로 이전하고 있는 평택에서 기지촌의 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진정한 인권회복과 현실적인 지원체계 마련을 위한 조례 제정은 시급한 과제이다. 조례 제정은 과거에 당연시 했던 차별과 야만, 폭력을 이제는 ‘금지’하고, 불의의 연속성을 끊어내며, 지금 이 순간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지역사회의 약속이자 실천이기도 하다.

국제평화도시를 이야기하면서 평택역사의 슬프고 고통스러운 삶을 맨 앞에서 견뎌내야 했던 그녀들을 품지 않는다면 우리가 이야기하는 평화와 인권은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들은 그녀들에게 빚을 지고 있으며, 때로는 가해자였음을 고백하고 성찰해야한다. 조례제정에 비겁하게 다른 핑계를 늘어놓지는 말자. 오로지 미군 기지촌 위안부 할머니들만 기억하고 응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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