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11월 11일

노동야학 학비 마련 소인극 공연
인근마을 순회, 34원 80전 전달

 

 

“경기도 진위군 북면 봉남리(京畿道 振威郡 北面 鳳南里)에 있는 진흥소년회(振興少年會)에서는 거(去) 십일일(十一日)에 제삼주년 창립기념식 (第三週年 創立記念式)을 거행하였는 바, 동회(同會)에서는 금년 칠월(今年 七月)부터 노동야학(勞動夜學)을 설치하고 금일까지 계속하여 오던 바, 마침내 학비 곤란(學費 困難)으로 호소하던 중 이번 삼주년 기념일(三週年 記念日)을 당하여 소인극(素人劇)을 하여 지방인사(地方人士)의 동정(同情)을 빌었다는 바, 그 성적(成績)이 양호하여 계속하여 삼, 사일 양일간은 인근 동리(洞里)로 순행을 하리라 하며, 이번 기념일에는 임원(任員)을 개선하여 앞으로는 많은 활동을 하리라는데, 개선된 임원(任員)과 기부인명(寄附人名)은 여좌(如左)하다더라.(하략)”(『중외일보』 1929년 11월 16일)

일제강점기는 암울한 시기였지만, 미래를 짊어질 어린이에 대한 다양한 지원이 많았다. 그중 하나가 소년회를 조직하고 어린이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는 것이었다. 소파 방정환은 “10년 후를 생각하라”며 어린이운동을 시작했다.

1920년대에 들어 각지에 소년회가 설립되고, 어린이운동이 전개됐다. 평택지역에도 평택소년회가 조직됐다. 평택소년회는 처음 1923년 10월경 평택소년야구단으로 조직됐다가 1924년 4월 평택소년회로 개칭됐다. 그동안 평택에는 평택소년회만 조직돼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당시 진위군 소재지인 북면 봉남리(현 진위읍 봉남리)에도 진흥소년회가 조직돼 활동했다.

그런데 진흥소년회가 언제 창립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1929년 11월 11일 창립 3주년 기념식을 거행한 것으로 보아 늦어도 1926년 11월 초순경에는 조직된 것으로 보인다. 창립 이후 활동에 대해 알려지지 않았지만, 창립 3주년 되는 해인 1929년 7월부터 무산아동을 위한 노동야학을 설치해, 교육활동에 노력했다. 하지만 이 노동야학에는 많은 비용이 소요됐는데, 이를 위해 창립 3년을 맞아 소인극을 공연하고 학비를 조달하고자 했다. 다행히 소인극은 성황리에 마칠 수 있었고, 기부금으로 34원 80전을 모아 학비 조달에도 많은 도움이 됐다. 소인극은 봉남리 외에 마산리, 은산리, 동천리와 용인군 진본리 등 인근 마을까지 순회공연을 하기로 할 정도였다.

1929년 11월 11일 창립 3주년에는 진흥소년회 임원을 개선했는데, 회장에 차호◯(車鎬◯), 부회장에 김영륜(金英倫), 총무에 이성태(李成台), 서무부장에 유덕경(柳德景) 부원에 전봉룡(全奉龍), 재무부장에 최순홍(崔順弘) 부원에 張孝儉, 사회부장에 조진호(趙 珍鎬) 부원에 최장봉(崔長奉) 등이 새로 선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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