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병모 / 민음사

 

▲ 이진아 사서
평택시립 지산초록도서관

‘그러면서 문득 솟아오르는 의문, 자신은 과연 저들처럼 어디에나 투명하게 녹아들 준비가 되어 있는 백설탕 같은 사람인지, 어떤 바람 한가운데서도 눈에 띄게 흔들리지 않고 다만 가볍게 무용수의 팔다리처럼 리듬을 갖고 나부기는 사람인지……핵심은 시간을 보내는 데 있었다. 어떻게든 시간을 보내면서 체세포의 수를 착실히 불리는 거야말로 어린이의 일이었다. 그 어린이를 바로 보는 어른의 일은, 주로 시간을 견디는데 있었다’

-본문 중에서-

소설은 첫 장면부터 네 식구가 등장한다. 처음 표지만 보고선 ‘네 명의 이웃이라는건가’아니면 ‘옆집 이야기라는건가’라고 한번 갸웃하게 한 제목 <네 이웃의 식탁>. 네 명의 이웃이 함께하는 식탁이라니 얼마나 단란한 식탁풍경이 그려질지 기대하며 열게 된 소설은 정부가 저출산 대책으로 시행한 ‘꿈미래실험공동주택’에 막 들어온 네 번째 입주자의 환영회가 열리며 시작한다.

실험공동주택에 이미 자리를 잡은 세 식구와 새로운 입주자와의 만남, 어색한 공기 속에 진행되는 친해지기 과정, 새 이웃에게 공동생활에 지켜야 할 규칙을 내미는 순간 등 처음 시작부터 무언가 어색하고 숨 막히는 장면을 보며 이런 불편한 분위기가 앞으로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유쾌하지만은 않은 생각이 들었다.

<네 이웃의 식탁>은 세 자녀 갖기 등 실험공동주택의 입주조건 속 제도의 허술함, 제도에 묶여 각기 다른 조건의 가정이 힘들게 맞춰 생활하는 공동체의 허상, 좋은 취지로 시작하지만 서로가 만족을 못 하는 의무적인 공동육아 등을 다룬다.

만연한 개인주의 사회에서 이상적인 미래 삶의 대안 중 하나일 수 있는 공동체 생활은 한 번쯤 꿈 꿔봄직하다. 특히 맞벌이 가정, 한 자녀만 있는 가정이 늘고 있는 요즘 공동육아는 매력적이기도 하다. 물론 공동체 생활을 잘 꾸려나가는 사례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바쁜 일상에 치여 소설 속 장면처럼 단란한 공동체 생활은 쉽지 않을 것만 같다.

올해 정부는 신혼부부, 사회초년생 등을 대상으로 행복주택 정책을 마련했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처럼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정책에 속에서 백설탕처럼 녹아들지 못하고 그 기간만 채우면 그만이라는 자세로 혜택을 누린다면 안 될 것이다. 제도는 마련됐다. 그 조건이 충족돼 그곳에 살면서 정상적인 공동체 생활을 원한다면 참여와 자발성, 양보와 배려가 필요하다.

이 작품은 구병모 작가의 최신작이다. 구병모 작가의 저서로는 <위저드 베이커리>, <그것이 나만이 아니기를>, <한 스푼의 시간>, <아가미> 등이 있다. 구병모 작가의 신작이란 말에 잡아든 이 소설은 기존 작품만큼 신선한 주제는 아니더라도 공동체 생활, 공동육아에 대해 막연하게나마 꿈꾸었을 이들에겐 관심 가질 만한 책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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