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 노동에
자본주의적 가치를 매긴다면
그 임금이 얼마일지
생각해 보면 어떨까

 

▲ 김기홍 집행위원장
평택비정규노동센터

<메리다와 마법의 숲> <모아나> 등 픽사 애니메이션 속에서 주체적인 여성상이 종종 등장하긴 했지만, 최근에 개봉한 영화 <인크레더블2>는 가사노동에 대해 지금까지의 대중 애니메이션에선 볼 수 없었던 이야기를 꺼내 보였다.

세 아이의 엄마인 주인공 ‘헬렌’이 처음 ‘윈스턴’에게 임무를 제안받았을 때 남편 ‘밥’보다 더욱 고민하고 망설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막내 ‘잭잭’은 어쩌며, ‘대쉬’의 숙제는 또 어떻게 하냐고 걱정한다. ‘가정’에서의 주요 업무가 헬렌에게 집중되어 있었다는 걸 보여주며, 그녀는 가사 노동 여성을 대표한다. 영화에서는 여성일수록 청소에서부터 시작되는 가정의 기초적 업무, 아이들의 교육에 더 많이 매여 있음이 헬렌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헬렌의 영화일까? 가사노동의 변화에 초점을 맞춘 것은 맞지만, 오히려 이 부분에서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인물은 밥이었다. <인크레더블2>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줄거리가 사건 전개를 이어가다 클라이맥스에서 만난다. 하나가 ‘일라스티걸’로 대표되는 ‘바깥 일’이었다면, 다른 하나는 인크레더블로 대표되는 ‘집안에서의 일’이다. <인크레더블2>는 밥을 통해 가사 노동이 절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초강력 ‘슈퍼 히어로’였던 밥에게마저 가사 노동은 너무 어렵고 고된 일이다.

청소기와 세탁기 등 산업화에 의한 발명품이 이제 많은 부분에서 가사 노동을 돕고 있지만, 그렇다고 가사 노동에 소비되는 시간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새로운 가사 노동이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집 안은 이전보다 더욱 깨끗해야 하며, 아이들의 양육과 교육 등에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은 더욱 늘어났다.

<인크레더블2>는 밥을 통해 이러한 요소들을 영화 속에 섬세히 녹여냈다. 밥은 대쉬의 숙제를 위해 매일 밤 새로운 공부를 한다. 거기에 자신이 망친 것 같은 딸 ‘바이올렛’의 연애사까지 걱정하고, 호기심이 왕성한 잭잭을 위해 끊임없이 책을 읽어줘야 하며, 17개에 달하는 무궁무진한 잭잭의 잠재력(능력)을 컨트롤해야 한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가사 노동의 영역에 밥이 들어오게 된 것이다. 가사노동은 집 안에서의 기본적인 청소, 식사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더 완벽한 청소와 더 나은 식사, 아이들에 대한 더욱 섬세한 돌봄이 가사노동의 축을 이루고 있으며, 이러한 일들이 전혀 쉽지 않음을 밥을 통해 보여준다.

밥은 TV의 모든 채널을 장식해버린 헬렌을 보며 응원하는 마음 한편에 자신이 초라해짐을 느낀다. 분명 밥은 가사 노동을 위해 처절하게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것이 밥의 성취를 충족해 줄 수는 없으며 멋지게 해내더라도 아무런 보상도 만족감도 주지 못하는 것이다. 가사 일이 끝나면 바로 다음 가사 일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이것이 지금까지 대부분 국가에서 다수의 여성이 겪어온 삶이다. 여기에는 경력단절 여성도, 맞벌이 여성도 포함돼 있다. <인크레더블2>는 이를 헬렌이 아닌 밥을 통해 더욱 적나라하게, 혹은 세심하게 보여준다. ‘일라스티걸’이 밖에서 악당들을 물리치고 불의와 싸우는, 우리가 기본적으로 생각하는 히어로였다면 밥은 안에서 사춘기 딸의 연애와 나날이 어려워지는 아들의 수학 숙제, 언제 터질지 모르는 막내 아이의 돌발행동과 집안일 앞에 흡사 전쟁터에서 전투를 치르는 듯한 시간을 보내고 해결해 나가는 현대의 히어로였다.

영화에서 일라스티걸은 일을 쉽게, 쉽게 해결해나가는 반면, 인크레더블은 매우 힘겹게 집안일을 수행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가사 노동 또한 바깥 일 못지않게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헬렌과 밥의 역할 바꾸기를 통해 숨겨진 노동을 조명한 셈이다. <인크레더블2>가 시대의 변화와 부름에 응답한 애니메이션으로 불리는 이유다. 지금 가사 노동은 주로 누가 담당하고 있는지, 가사 노동에 자본주의적 가치를 매긴다면 얼마를 임금으로 주어야 할지 생각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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