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 문학동네

 

 

▲ 윤지수 사서
평택시립 진위도서관

사람은 자아분열로 충격을 느끼기도 하고, 미처 깨닫지 못한 사실을 깨달은 것에 대해 감탄하기도 하고 새삼 알고 있던 사실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반대로 동질감을 느끼는 부분에서는 마음의 위안을 얻기도 하고 작가와 함께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책 한 권을 읽었을 때 큰 깨달음을 얻는 책이 좋은 책일까, 그저 소소하게 마음을 어루만져주면 좋은 책일까 고민해 봤지만, 그에 대한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조금이라도 깨닫는 바가 있다면 그것은 나에게 좋은 책이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그 책을 읽은 일이 낭비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작가는 고전을 다시 읽었을 때의 충격에 관해 이야기하며 서두를 시작한다. 반드시 고전이 아니더라도 이미 읽은 책 중에서 다시 읽으면 충격적인 책들이 많다. 나에게 있어 <어린왕자>가 그렇다. 읽을 때마다 새롭고 다른 부분에 감동을 하게 된다. 책을 읽을 때 처한 나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읽다>는 단락 마다 나를 놀랍게 했다. 모두가 아는 책 내용을 다시 짚어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놀라움을 느끼게 한다.

돈키호테는 그저 용감하지만 어리숙한 기사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그 돈키호테가 책을 너무 사랑해서, 책에 빠져들어 현실을 구분하지 못했다는 내용은 충격이었다. 돈키호테는 너무 익숙한 인물이었지만 나는 그 책을 제대로 읽어본 적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저 아는 이야기라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라서 제대로 책을 읽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작가의 말대로 고전을 집필한 작가의 노력과 그 소설이 고전으로 남게 된 이유가 있을 텐데 그것을 간과하고 ‘들은’ 이야기로 치부해 나는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책에 푹 빠져서 한 권을 읽고 나면 현실로 돌아오기까지 잠시 시간이 필요하다. 아쉽기도 하고 현실로 되돌아오기까지 조금의 시간이 필요하다. 연극이나 뮤지컬을 볼 때도 이 극이 바로 내 눈앞에서 펼쳐지는 ‘연기’라는 것을 망각하고 그 이야기 속으로 깊이 빠져버린다. 배우들이 극을 끝마치고 커튼콜을 할 때에야 정신이 든다. 그리고 그 배우의 얼굴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분명 아까는 극 중 인물이었는데 연극이 끝나고 나니 그저 작품 속에서 연기를 한 ‘배우’일 뿐이었다. 지금이야 많이 나아졌지만 10대 때, 그리고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정말 깊이 몰입하고 깊이 빠지곤 했었다. 작가는 마루에서 책을 읽다가 어머니의 심부름 소리를 듣고 굉장히 낯설고 불쾌하게 느끼며 소중한 개인적 세계가 침해받는 기분이 들었다고 말한다. 그 말에 공감했다.

‘놀라웠던 것은 어머니는 내가 방금 전까지 겪은 일에 대해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 당신에게 나는 그냥 누워서 소설책을 보며 뒹굴 거리는 아이에 불과했던 것이다’ -<읽다> 중에서-

우리는 책에 집중했다가 깨어나면 이런 기분을 느끼며 사람들에게 해당 책을 추천하고 싶어지기도 하고, 반대로 나만의 책으로 간직하고 싶어지기도 하는 것 같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작가가 이야기한 책들을 모조리 읽고 싶어진다. 작가와 함께 같은 충격을 느끼고 싶기도 하고 누군가가 이렇게 푹 빠져서 볼 만한 책이라면 나도 읽고 싶다는 흥미가 생기기도 한다. <읽다>는 또 다른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안내하는 길잡이 역할도 하고 있다. 작가가 소개한 책들을 읽어본 후 다시 이 책을 읽었을 때 작가와 같은 충격이 느껴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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