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성은 / 나한기획

 

 
▲ 이단비 사서
평택시립 지산초록도서관

“저는 기억 요정 또또예요. 잊고 싶은 기억을 말해주면, 전 그걸 없애 줘요. 쓸데없는 기억 때문에 낭비하는 시간을 줄여주는 요정이랍니다”

잊고 싶은 기억을 말하면 없애준다니, 세상 많은 사람은 자신들의 아프고 수치스러웠던 기억을 잊을 수만 있다면 거금을 내서라도 이 요정을 만나려 할지도 모른다.

작가 제성은은 새벗학상을 받으며 동화작가가 됐고, 아이들을 위해 <바다 마녀 우술라의 고민상담소>, <코털 인간 기운찬의 미세먼지 주의보> 등을 지었다. 저술한 그림책은 주로 아이들의 감정이나 마음을 따뜻하게 담아낸 작품들이 많다.

작가는 ‘힐링 세대공감 실버동화 시리즈’와 만나, 아이들과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노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펴냈다. 아이들의 시각으로 순수한 기억요정 ‘또또’를 통해, 노인들이 겪고 있는 치매 문제를 이해할 수 있게 그려냈다.

그림책의 색감과 색칠은 표지만큼 따뜻하고 온화하다. 물감에 물을 거의 물을 묻히지 않은 듯 붓의 동선이 그대로 드러난 그림도 여기저기 보이고, 할머니의 아득한 기억처럼 정확한 묘사가 거의 없다. 사람의 형체지만 얼굴의 모양만 있을 뿐 눈·코·입도 없고, 마치 심령사진과 같이 사람의 형체도 보인다. 중간에 있는 겹겹산중의 산들과 미로, 나뭇가지는 기억이 정확하지 않은 할머니의 기억 찾기를 표현한 마냥 복잡하다. 따뜻하지만 한편으로는 무거운 느낌을 주는 그림과 할머니의 기억을 비교하며 읽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할머니가 또또를 통해 잊고 싶어 하는 기억은 나이와 리모컨과 고등어찜 같은 것들이다. 노인들이 치매가 오면서 잊어버리기 쉬운 그들의 나이, 생활용품, 저녁 식사를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아마 치매 환자를 가까이 둔 사람들은 알겠지만, 치매가 온 노인들은 어린이가 된다. 자신의 나이를 잊어버리고 어린 시절로 돌아가 길을 잃기도 하고, 저녁 식사를 한 사실을 기억하지 못해 자꾸 먹곤 한다. 보는 사람은 슬프고 억장이 무너지지만, 그들은 또또 요정과 만나 이야기하고 있어 슬픔을 모른다. 마치 이 그림책의 할머니처럼 자신의 기억을 나눌 요정이 생긴 것처럼 슬픔을 모르는 것 같이 말이다.

“그냥 누군가와 이야기가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기억을 잃는 걸 알면서도 이야기 한 거예요?”

요즘같이 바쁜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과 살아가는 노인들은 외롭다. 손자, 손녀도 종일 게임이나 흥밋거리를 좋아할 뿐 할머니, 할아버지의 이야깃거리에는 별로 흥미가 없다. 옛날 옛적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할머니의 전래동화를 듣던 시절은 이제 끝났으니 말이다. 어쩌면 그들은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소통 창구가 사라졌는지도 모른다. 그들과 아무도 대화를 해주지 않으니, 자신의 이야깃거리를 잊어버리는 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영영 잊어버리면 치매라는 병이 불현듯 찾아왔던 건 아닐까?

<기억요정 또또>는 알츠하이머라는 무겁고 무서운 주제에 대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책이며, 우리 주변에 있는 노인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코 끝 찡한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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