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9월 22일

결혼 8~9개월 후 변심 아내 질책
집 나간 아내 찾으려 급행열차 타

 

 

“경기도 진위군 송탄면 장안리 김연태(京畿道 振威郡 松炭面 長安里 金連泰, 26)는 본년 이월에 원성녀(元姓女, 26)와 결혼하여 팔구삭 동안을 아무 험절 없이 살아오던 바, 뜻밖에 본월 초순경부터 원성녀의 마음이 우연히 변하기 시작하여 행동이 전과 다른 눈치를 짐작한 김연태는 원성녀를 대하여 행동이 전일과 다름을 질책도 하고 백방으로 달래기도 하였으나 (중략)  원성녀는 철로가로 도주하는 지라 급한 마음에 살같이 달려가는 차로부터 뛰어내렸는데 요행 생명에는 관계치 아니하였으나 중상이 되었더라. 그러하나 김연태는 정신을 수습하여 원성녀를 붙잡고 집으로 돌아갔다더라.”(『매일신보』 1917년 9월 27일)

결혼제도는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요하지만, 때로는 사회적으로 불편함을 가져오기도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결혼제도는 유지되고 있다. 쌍방 간의 합의를 통해 결혼하지만, 그 합의가 깨어졌을 경우 결혼생활이 유지되기 어려운 상황에 부닥치기도 한다. 예전에는 결혼이 반드시 해야 하는 통과의례였지만, 최근에는 선택(?)이 아닌가 한다. 서로 좋아서 결혼했는데, 얼마 정도 지나서 마음이 변해 싫어진다면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송탄면 장안리에 사는 김연태는 1917년 2월에 원성녀라는 여성과 결혼했다. 8~9개월 동안 깨가 쏟아지는 신혼생활을 했는데, 어느 날 원성녀가 마음이 변하기 시작하였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변심한 아내의 마음을 돌려놓기 위해 김연태는 달래기도 하고 질책을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원성녀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갈수록 심해지자 김연태는 1917년 9월 21일 밤새도록 아내 원성녀를 나무랐다. 원성녀는 22일 새벽에 종적을 감추었다. 황망한 김연태는 아내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였지만, 행방을 알 수 없었다. 다른 지역으로 갔다가 허탕을 치고 평택행 급행열차를 타고 돌아오는 중이었다. 혹시나 하여 차창을 보던 중 아내 원성녀가 철로 가를 지나는 것을 보았다. 급한 마음에 김연태는 급행열차에서 뛰어내렸다. 다행히 큰 부상을 입지 않은 김연태는 원성녀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후 삶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지만 잘 극복해 나갔지 않았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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