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었던 그 곳이
가만히 있으면
안 되는 자리였다

 

▲ 소태영 회장
평택시청소년단체협의회

이제 가슴에 묻고 그만하라고 한다. 무엇을 그만하라는 말인가. 얼마 전 강원도 속초 산불에 수학여행을 간 평택 현화중학교 학생들이 탑승한 버스가 불에 탄 소식을 접하고 세월호 참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몸서리쳐진다. 우리 지역 청소년들이 화마에 갇혀 큰일이 있었다는 상상만으로도 치가 떨리는 일이다.

세월호 사건을 잊지 않는다는 말은 단순한 추모의 메시지가 아니다. 책임감을 가지고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겠다는 다짐이다. 매년 4월 16일에는 무거운 책임감과 애도의 심정이 섞여 이루어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느껴진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로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방관해온 문제가 가시화된 이상, 이 감정은 영원히 지속될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한다.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이뤄내야 할지를 알 때, 비로소 우리 사회는 ‘세월호 참사 이전과 달라진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그래야 ‘세월호 참사 이후 무엇이 달라졌는가’라는 질문이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는 달라져야 한다’고 하면서 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2014년 4월 16일이라고 말한다. 이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해내지 못하면 결코 그다음으로 나아갈 수 없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세월호 탑승자 476명 중 304명이 바다에 잠겼다. 그날의 산란한 분위기를 잊지 못한다. 그들이 그랬듯이 모두가 금방 구조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시간이 가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거의 다 잠긴 선체, 구조되지 못한 탑승객들, 쏟아지는 오보, 한 박자 느린 정부의 대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줄기 희망을 놓지 않고 구조를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들, 실감이 나지 않았고 공허함과 무기력감으로 가득한 순간들이었다. 다른 재해나 사고처럼 무언가가 침투하고, 부딪치고, 폭발하는 데에서 오는 충격과는 달랐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는데도 국가는 책임을 회피하는데 급급했다. 뿐만 아니라 세월호의 진실을 원하는 가족과 국민에 대해 사찰하고 억압까지 했다. 그리고 세월호 사건의 진상을, 진실을 밝히는 것을 노골적으로 방해했다. 겉만 멀쩡하게 유지됐던 사회의 속은 썩을 대로 썩어버렸다. 세월호 사건은 붕괴라기보다 오랜 시간 진행된 균열에 가까운 모양으로 사회의 속을 가르며 부패된 단면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다.

이성과 합리로 완벽하게 설계된 것처럼 보였던 사회의 구조물은 같은 맥락에서 수없이 강조되던 효율성이라는 명목 하에 쓸모를 잃었고, 그동안 사회를 지탱하던 것은 다양한 경험으로 구축된 개개인의 주체적인 신뢰가 아닌 결과주의에 눈이 먼 집단적 맹신이었던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끝없이 불거졌다. 삶을 영위하는 데 있어 기반이 되었던 규칙은 무너졌고, 국민들은 방향을 잃었다. 국가마저 불신의 대상이 된 국민들에게 더는 믿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세월호 참사를 생각해보면 기적을 바라기에는 이 땅의 살아있는 자들의 무책임이 너무 커 보였다. 나침반 없는 우리 사회의 불공정함이 침몰한 세월호 만큼 무겁고, 쇠사슬보다 더 단단했다.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약속에 대한 존중이 없는 사회,  세월호에 수장돼야 할 것은 우리 사회의 물비린내 나는 도덕성이 아닐까.

아직도 우리는 제자리를 찾아가지 못했다. 아니,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도 알지 못했다. 가만히 있었던 그곳이, 가만히 있으면 안 되는 자리였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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