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정순/샘터

 

   
▲ 박영선 사서
평택시립 장당도서관

저자는 어린 시절, 낡은 수도꼭지에서 갈색의 진한 녹물이 점점 투명해지며 맑은 물이 나오는 순간을 친구들에게 “오렌지 주스가 나오는 수도꼭지가 있다”고 말했다가 거짓말쟁이로 몰렸던 기억을 꺼낸다. 어린 아이의 상상과 현실과 간절한 바람이 뒤섞여서 불쑥 나온 말에 받은 비난은 내가 본 것들이 거부당하는 좌절감과 내가 본 것으로 사람들과 소통하지 못하는 막막함이 마음속에 쌓여갔고 ‘보다’라는 것과 관련된 표현, 사물,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커져갔다고 한다. 그리고 그 화두는 화가로서 ‘보다’와 ‘보이지 않다’ 사이의 경계를 오가며 시각장애아들과 함께 다양한 예술체험을 해나간다.

이 책의 전반부는 이런 질문의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비시각장애인으로서는 상식 밖으로 생각되는 일들, 볼 수 있어야 하는 미술을 시각장애아들이 하는 작업의 의미, 그들의 작품을 통해 그들이 보는 세계를 이해함으로써 역으로 우리가 볼 수 없었던 많은 세계가 있음을 깨닫게 해주고 있다. 앞을 볼 수 없는 효빈이가 그림을 그리겠다고 교실 창가로 자리를 옮기고 크레용과 눈의 거리는 1, 2센티 정도로 가깝게 붙어 스케치북을 돌려가면서 그리기 시작하는 이상한 몸놀림.

효빈이는 무엇을 그렸을까? 희귀병을 앓던 효빈이는 의사의 진단보다 3년을 더 살았지만 그런 효빈이가 남긴 풍경화는 무엇을 의미할까? 인간으로서 죽을 때까지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이 책의 후반부는 맹인모상(盲人模像)을 인용하며 ‘코끼리 걷는다’와 ‘코끼리 만지기’ 프로젝트과정을 담고 있다. 맹인에게 코끼리를 만져보고 자기가 알고 있는 코끼리에 대해 말해 보도록 하였는데 상아를 만진 맹인은 무같이 생긴 동물이라고 하고 다리를 만진 맹인은 커다란 절구 공같이 생긴 동물이라 하고 꼬리를 만진 이는 굵은 밧줄같이 생겼다고 하는 등 서로 다투었다. 사자성어의 맹인은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진리를 보지 못하는 인간 모두를 뜻한다. 저자는 보지 못하는 아이들이 품안의 사이즈를 넘어서는 거대한 무엇에 대한 상상과 두려움을 돌파해 보이지 않기에 가능한 상상력을 펼쳐보고자 했다.

이 책은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들을 중심으로 펼쳐 보임으로써 그 본질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결핍이 있는 이들을 통해 오히려 불완전한 우리의 결핍을 발견하고 그들의 무한한 창작의 가능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한다. 이 아이들은 바람도 사진으로 찍을 수 있고,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만들 수 있고 패션 감각이 뛰어나고 자신의 존재를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내고 소통하기 때문이다.

‘그림은 앞이 보이지 않는 자가 하는 일이다. 그는 본 것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기억과 느낌을 표현한다’고 했던 파블로 피카소의 말처럼 장애를 가진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내가 보는 것이 혹시 우물 안 개구리가 보는 하늘은 아닌지, 내 생각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싶을 때, 이 책을 추천한다.  

저작권자 © 평택시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