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무엇인가를 원할 때 상대방이 선뜻 내가 원하는 것을 가져다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정하고 매달리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것을 해 주겠다고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예전에 장사하시던 어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상대방 지갑에 있는 돈을 내 주머니로 옮기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지갑을 열게 하는 것이 장사의 수완이라고 하셨지요.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배움이 길지 않았던 어머니의 그 말은 표현의 방식이 다를 뿐 어떤 철학자보다도 훨씬 훌륭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학문의 깊이가 깊은 철학자들은 말만 더 어렵게 할 뿐이지 돌이켜 생각해보면 사실상 어머니가 하셨던 말과 똑 같은 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으니까요. 오히려 삶이 녹아 있는 철학은 쉽게 와닿고 그래서 실천이 가능한 경우가 많은 반면 철학자들의 말은 너무 어려워서 뜬구름 잡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만 보아도 그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철학자들은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을 다음의 두 가지로 봅니다. 하나는 ‘공포’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돈’입니다. 이 두 가지 중 한 가지가 있어야 내 의도에 따라 사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지요.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서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공산주의 사회라고 한다면, ‘돈’으로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돈’은 이 사회에서 잘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는 존재이지요. 그렇게 생각하면 그것은 꼭 화폐만이 아니라 내게 이득이 되는 어떤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타인이 지갑을 연다는 것은 그 물건이 내게 이로울 때일 것입니다. 어머니의 말을 곱씹어 생각하면 그 사람이 지갑을 열고 선뜻 그 물건을 살 수 있을 만큼의 가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어머니가 팔던 물건은 사과였으니 그 사람이 지갑을 열게 하기 위해서는 사과를 사는 행위가 자신에게 이롭다고 판단해야 비로소 지갑을 여는 행위를 할 수 있습니다.

“지갑을 열게 만드는 것이 장사 수완”이라는 말은 이렇게 길게 풀어쓰지 않아도 이미 오래전에 어림짐작으로 이해했던 말입니다. 그런데 철학을 공부하면서 이 말을 이렇게까지 어렵게 의미를 풀어서 설명하려니 그것도 참 아이러니한 일이지요.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돈’이라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바탕이 되는 것이므로, 만일 타인을 움직이게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 의미를 잘 풀어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돈이 많아서 많은 돈을 주고 상대방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내가 제안하는 어떤 것이, 혹은 내가 팔고자 하는 어떤 것이, 그 사람에게 의미를 갖는가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 사람에게 의미가 없다면 절대 움직이지 않을 테니까요.

그런데, 나는 거기에 하나를 덧붙이고 싶습니다.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공포’와 ‘돈’이 분명하지만, 인간에 대한 ‘사랑’도 그만큼의 힘을 갖는다는 것을 말입니다. 공포나 돈이 아니어도 타인에 대한 깊은 애정은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시인은 모든 것이 변해도 절대 변하지 않는 것이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대구로 내려간 많은 이들의 인간애를 떠올리다 내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문득 그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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