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8월 12일

전일·방인근·이재곤 장시간 열변
1천여 명 참석, 저녁 9~12시 진행

 

 

“朝鮮學生大會 巡廻講演團 中 南鮮隊인 全一, 方仁根, 李在坤 三氏가 去 十二日에 當地에 倒着하여 當日 午後 九時부터 公立 普通學校에서 全一 氏는 “무엇으로써 살아날꼬”라는 演題로, 方仁根 氏는 “生의 秘決”이란 演題로 長時間에 淊淊한 熱辯을 吐하고, 李在坤 氏는 “旣成品이 되려거든”이라는 演題로 略 一時間 半이나 滿場의 氣焰을 吐하고 十二時頃에 歡呼聲裡에서 閉會하였는데, 聽衆은 一千餘 名이었고 團圓 一行은 翌日 午前 八時에 自動車로 安城을 向하여 出發하였더라.”(『동아일보』 1921년 8월 18일)

한말과 일제강점기 이른바 배움이라는 것은 학교 등 정규 교육기관도 있지만, 각 단체에서 전국을 순회하는 ‘강연’이 중요한 수단이었다. 이러한 관계로 계몽단체를 비롯해 청년단체, 학생단체 등 대부분의 단체들이 강연회를 개최하거나 강연단을 조직하여 전국을 순회하였다. 당시 배움에 목말라하던 사람들은 강연회에 몰려들었다. 특히 3.1운동 이후 전국 순회강연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평택에도 순회강연이 열렸는데, 청중이 구름 같이 몰렸다.

조선학생대회는 1921년 8월 12일 평택을 찾아 강연회를 개최하였다. 조선학생대회는 1920년 5월 9일 조직되었으며, 이 해 7월 하기 순회강연단을 조직해 전국에서 강연회를 개최하였다. 이듬해 7월에도 남선단 등 4개의 순회강연단을 조직하였다. 평택에는 남선대가 8월 12일 강연회를 개최하였다. 이날 강연회는 오후 9시부터 12시까지 무려 3시간이 계속되었다.

강연은 전일全一이 ‘무엇으로써 살아날꼬’, 방인근方仁根이 ‘생의 비결’, 이재곤李在坤이 ‘기성품이 되려면’이라는 주제로 각각 1시간 또는 1시간 반 정도씩 열강 하였다. 당시 기사에는 ‘염염焰焰’ 또는 ‘기염氣焰’이라고 하여 ‘폭죽 터지는 듯’한 열변을 토하였다. 강연 내용은 확인할 수 없지만 신문화 또는 당시의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주제로 한 것으로 추정된다. 평소 들을 수 없었던 주제였기 때문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강연장으로 몰려갔다.

강연을 한 전일은 1918년 6월 한인사회당을 조직하는데 참여한 바 있으며 조선학생대회 부회장으로 활동하였다. 방인근은 일본 주오대학中央大學, 이재곤은 중국 상하이유학생회에서 활동한 유학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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