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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 콘텐츠 전문박물관,
도시의 정체성을 세우다

 

평택시는 고덕국제신도시로 개발하고 있는 고덕면 좌교리 함박산 중앙공원에 2024년 하반기 개관을 목표로 종합박물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평택을 대표하게 될 박물관 건립에 있어 구체적인 형식과 내용까지 완성해가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평택박물관 건립은 20여 년 전부터 꾸준히 논의되어 온 시민의 염원인 만큼 많은 고민 속에 전문가와 시민, 행정이 지혜를 하나로 모아야 한다. <평택시사신문>은 전문기자단과 함께 전국의 박물관을 직접 돌아보며 각 박물관의 설립 배경과 특징, 장단점, 박물관이 갖추어야 할 형식과 내용, 프로그램 등을 지면에 실어 평택박물관 건립에 도움이 되도록 20회에 걸쳐 ‘박물관을 가다’ 특집기사를 연재한다. - 편집자 주 -

 

 

우리나라 최초로 건립된 ‘산성박물관’이라는 희소성
체험위주 어린이박물관은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
학예인력 부족, 박물관 운영에 가장 치명적인 요소

 

▲ 인천광역시 계양구 계양산성박물관 전경

 

■ 산성山城으로 박물관을 만든다고?

박물관의 유형은 다양하다.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처럼 국·공립종합박물관이 있는가 하면, 해양박물관, 산업박물관, 교육박물관, 민속박물관처럼 콘텐츠가 뚜렷한 전문박물관도 있다. 특정 인물을 선양하는 기념관도 있으며, 근래에는 쇳대박물관, 등잔박물관, 카메라박물관, 음반박물관처럼 규모는 작지만 전문성이 강조한 매력적인 개인박물관들도 많다.

의외로 성곽城廓을 콘텐츠로 만든 전문박물관은 흔치 않다. 우리나라에는 한양성곽공원 내에 ‘한양도성박물관’이 있고, 가까운 수원에는 ‘수원화성박물관’이 있을 뿐이다. 특별한 콘텐츠로 박물관을 만드는 것은 대단히 가치가 있다. 대중들의 호기심과 관심을 이끌어 내기에도 유리하다. 인천시 계양구에서 지난 5월 28일 ‘계양산성박물관’을 개관했다. 세간의 의구심을 떨쳐내고 이뤄낸 쾌거였다. 캐치프레이즈는 ‘한국 최초의 산성박물관’이다. 자연스럽게 언론과 대중의 관심이 집중됐지만 안타깝게도 코로나19가 길을 막았다.

 

▲ 제2전시실
▲ 열린자료실

 

 

 

■ 계양구가 ‘산성박물관’에 꽂힌 이유

인천은 항구다. 계양은 역사적으로 한양 관문의 중심이었고 경기우도를 대표하는 고을이었다.

계양산성은 계양산에 있다. 계양산은 해발 395m에 불과하지만 정상에 오르면 해안선이 복잡했던 한강 하류지역과 검단, 부천 등 주변지역이 한눈에 조망된다. 시야가 트이고 산세가 아름다워 평소에도 계양구민뿐 아니라 인천과 부천지역에서 많은 주민들이 찾는다. 산성山城은 삼국시대에 처음으로 축성築城되었고, 그 후로도 여러 차례 개축改築 과정을 거쳤다. 그만큼 군사적 중요성이 큰 산성이었다는 말이다. 

계양산성은 조선전기 폐성廢城 됐다.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간척으로 물길이 바뀌었고, 한강 하류지역의 군사적 방어체계가 재정비되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보여 진다. 오랫동안 방치됐던 계양산성은 일제강점기 공동묘지로 변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적이 공동묘지로 변한 것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이것이 산성의 원형을 보존하는 데는 오히려 득이 됐다.

세상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졌던 계양산성이 다시 주목받은 것은 1992년이다. 인천광역시가 시지정문화재로 지정하고, 문화재지표조사를 실시하자 정치권을 비롯한 많은 시민들이 역사적, 문화재적 가치에 다시 주목했다. 2000년대 초부터는 세 차례의 발굴조사가 실시됐으며, 현 계양구청장이 부임하면서는 일곱 차례의 발굴이 더 이뤄졌다. 약 10년 동안 이뤄진 열 차례의 발굴조사결과 성곽의 실체와 명문이 적힌 목간 등 다수의 유물이 수습됐다. 자연스럽게 박물관 건립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계양산성의 역사적 가치가 관심을 받자 정치권에서는 박물관 건립과 국가문화재로의 지정을 선거공약으로 내걸었다. 국가문화재 지정과 박물관 건립으로 계양구의 역사적 정체성을 세우고 구민들에게 문화복지를 제공하겠다는 공약이었다. 결국 계양산성박물관은 현 계양구청장의 성실한 공약실천과 적극적인 행보, 지역 정치권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2020년 5월 29일 국가사적 지정과 함께 개관에 성공했다.

▲ 교육실
▲ 제1전시실의 계양산성 출토 유물과 영상 콘텐츠

 

■ 무엇보다 접근성이 중요

박물관 건립은 매우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다. 시민들과 의회를 설득해서 ‘박물관조례’를 제정 하고, 지방자치단체와 머리를 맞대고 예산확보를 해야 하며, 타당성조사, 유물조사, 실시설계 등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건축 과정에서 예산 부족과 예기치 않은 변수가 발생하면 불가피하게 설계 변경도 필요하다. 완공 이전에 운영조례를 제정해야 하고 전시와 운영도 잘해야 한다.

인천종합버스터미널에서 전철을 타고 30분쯤 달려 계산역에서 내렸다. 계산고등학교 방면으로 7~8분쯤 오르니 우뚝 솟은 계양산 아래 박물관이 보인다. 박물관은 경사면을 활용해 건축한 탓인지 실제 높이보다 웅장해보였다.

계양산성박물관 개관을 주도한 견수찬 선생의 안내로 박물관 답사에 나섰다. 박물관 개관 경험이 풍부한 견수찬 학예사는 박물관 건립에서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은 ‘접근성’이라고 강조했다. 계양산성박물관은 연인원 50만 명 이상이 찾는 계양산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도보 10분 거리에는 전철역이 있으며, 주변에는 초·중·고등학교에 대학교까지 있다. 모든 주민들이 손쉽게 찾을 수 있는 이점이 확실했다.

계양산성박물관은 관람객을 연인원 5만 명으로 잡았다. 전문박물관인데다 규모가 작아서 주 대상을 전국의 초·중·고등학생으로 상정했다. 박물관 규모는 대지 6739㎡(2038평)에 연건평 1998.94㎡(605평)이다. 건물은 계양산의 가파른 경사면을 이용하여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건축됐다. 지하 1층은 실질적으로는 지상 1층과 같아서 정문과 로비, 두 개의 상설전시실, 열린 자료실이 이곳에 있다. 2층의 절반은 기획전시실이고, 나머지는 개방형 수장고, 교육실, 연구실로 사용한다. 3층은 전체를 카페와 테라스로 꾸몄다. 우리 일행이 방문했을 때 기획전시실에서는 ‘자료로 본 계양의 역사’를 기획전시 중이었다. 고지도를 비롯한 다양한 사료를 활용한 전시였는데 학예사들의 땅방울이 곳곳에 배어 있었다. 견수찬 학예사는 1년에 두 차례 정도는 기획전시를 해야 하는데 전문학예사가 2명뿐이고 행정인력도 없어 1회밖에 할 수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 유물보다 중요한 콘텐츠와 전시기법

계양산성박물관은 설계에서 준공까지 약 110억 원의 비용이 들었다. 대부분은 국비와 시비로 충당했고, 부평구에서는 부지구입비 등으로 20%만 부담했다. 건축설계를 공모했을 때 이름 있는 여러 건축가들이 응모했다. 산성과 박물관을 연결하는 멋진 설계도 있었고, 전시공간을 창의적으로 설계한 도면도 접수됐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예산이었다. 김인수 박물관장은 건축부지와 예산의 조화 없이는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했다.

박물관은 건립도 중요하지만 운영은 더욱 중요하다. 견수찬 학예사는 박물관은 건립비용 30~40%, 운영비용 40~70%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건립비용에서도 건물을 짓는데 60%가 소요된다면 내부 전시실을 꾸미는데 40%가 든다고 했다. 대다수 박물관들이 실패하는 원인은 건물은 멋지게 지어 놓고 소프트웨어 구축이나 운영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계양산성박물관이 개관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실력과 경험이 풍부한 전문학예사를 선발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출중한 능력을 가졌어도 학예사 혼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연구·교육·전시·유물구입과 관리 등 각 분야를 나눠 맡을 전문학예사가 더 필요하고 행정지원도 필요하다. 그래야만 정상적 운영이 가능하다. 견수찬 학예사는 세심한 운영조례 제정의 필요성을 재삼 강조했다. 운영조례가 잘 갖춰져야 체계적 운영이 가능하다는 말이었다.

박물관 건립에서 유물은 가장 기본적인 요소다. 박물관은 숙명적으로 유물을 통한 스토리텔링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계양산성은 발굴과정에서 유물이 적게 출토됐다. 더구나 먼저 발굴된 유물들은 인천의 다른 박물관에서 전시하는 경우가 많아서 유물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유물이 부족할 경우 다양한 콘텐츠를 활용한 전시기법이 동원된다. 계양산성박물관에도 유물로 설명해야할 공간에 도판과 영상, 애니메이션, 체험시설 등 다양한 기법이 사용된 것을 볼 수 있었다. 견수찬 학예사는 유물이 충분치 못하다보니 다양한 기법을 활용할 수밖에 없었는데 사료와 내용의 객관성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다는 고충을 털어놨다.

 

▲ 계양산성박물관 제2전시실 산성역사실

 

■ 배울 점과 해결할 점 엇갈려

계양산성박물관은 장점이 큰 만큼 단점도 도드라진 박물관이다. 장점은 무엇보다 계양산성이라는 역사적 장소에 박물관을 건립한 것이며, 접근성이 매우 뛰어나다는 점이다. 거기에 ‘우리나라 최초로 건립된 산성박물관’이라는 희소성으로 교육과 홍보마케팅에 유리했다.

반면 아쉬운 점도 많았다. 가장 큰 문제가 건축설계였다. 재정적 문제로 최선의 설계도면이 선택되지 못한데다 건축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설계변경을 하면서 전체적인 동선의 유기적 관계가 흐트러졌다. 주 관람 층을 어린이나 청소년으로 상정했으면서도 어린이체험관이나 각종 체험시설이 부족했다. 특히 저학년 어린이들은 체험위주의 교육을 실시해야한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어린이체험관은 반드시 고려돼야 할 사항이다. 계양산성박물관의 교육공간은 5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강당 한 곳 뿐이었다. 박물관 운영에서 평생교육의 기능이 강화되는 추세로 볼 때 다양한 교육공간을 확보하지 못한 점은 향후 운영상 어려움을 가져올 것으로 보였다.

박물관 답사를 마치고 3층 카페테리아로 올라갔다. 카페의 문을 열자 눈앞이 환하게 밝아진다. 3층 대부분을 차지하는 카페와 테라스는 지대가 높은데다 전면을 유리창으로 마무리해 계양구 시가지 전체가 한눈에 조망됐다. 구민들이 박물관 관람이 아니더라도 한 번쯤 와 보고 싶은 카페로 여겨졌다.

 

글·사진/김해규 전문기자·평택인문연구소장

 

■ 계양산성박물관
◆ 관람 안내

○ 주소 : 인천시 계양구 계양산로 101
○ 관람 시간 : 오전 9시~오후 6시
(종료 30분 전 입장마감)
○ 휴관일 :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 추석
   ※ 공휴일이 겹치면 그 다음 날 휴관
○ 관람료 : 개인 1,000원, 군경 500원, 단체 20인 이상 800원, 군경단체 500원
만 18세 이하·만65세 이상, 장애인,
독립유공자, 한 부모 가족은 면제
○ 대중교통 : 인천지하철 1호선 계산역(5번 출구), 일반버스 81, 88, 90 등 계산역 하차
○ 주차료 : 최초 30분 600원, 30분 후 15분마다 300원
○ 문의 전화 : 032-450-8317
○ 누리집 : 계양산성박물관
(https://museum.gyeyang.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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