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시는 미군 관련
상위 법령을 마련하고
미군과의 직접 협상을 위한
의견을 적극 개진해
지자체의 권한을 높여야 한다

 

 
▲ 임윤경 사무국장
평택평화센터

2017년 여름, 전국에 내린 폭우로 평택시의 한 마을에 물난리가 났다. 물난리는 마을과 맞닿은 미군기지가 철조망을 콘크리트 벽으로 바꾸면서 물이 제대로 빠지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참사다. 침수로 피해를 본 주민은 삶터와 일터를 모두 잃었다. 이후 피해 주민은 미군으로 인한 피해가 모두 그렇듯 소송을 통해 국가에 배상을 신청했다.

그리고 3년이 훌쩍 지났다. 소송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소송 내내 미군도, 평택시도 본인의 책임이 아니라며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미군 측은 콘크리트 장벽 바깥은 자기 소관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콘크리트 장벽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이다. 서탄면 장등리 침수는 장벽 바깥에서 난 것이니 그 책임은 평택시에 있다는 것이다. 반면, 평택시는 옹벽 바깥 1m까지는 한국 정부가 미군에게 준 공여지로 평택시는 어떠한 권한도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니 이번 침수는 온전히 미군 책임이라는 것이다. 1심 재판은 미군과 평택시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피해 주민이 승소한 것이다. 이에 평택시는 전적으로 미군 책임이라며 항소를 냈고, 주한미군을 대변하는 법무부 또한 침수 피해에 대한 책임이 없다며 항소했다. 그렇게 시작된 2심은 처음 소송 내용과 달리 피해자 청구 자격에 초점을 맞춘다. 소송이 길어지면 내용도 달라는 것일까. 2심 판결은 피해자 5명 중 원고보조참가인 4명은 청구 이유 없음으로 기각돼 패소에 가까운 결과가 나왔다. 피해 주민은 80%가 삭감된 1800만 원 정도의 보상만 받게 됐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침수 피해를 본 개인은 안타깝게도 이번 소송 결과로 평택시와 법무부에 각각 2400여만 원 정도의 소송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유는 이렇다. 소송에 패소하면 승소한 상대방 소송비용까지 부담하도록 하는 ‘소송비용 패소자부담 원칙’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국가배상소송에서 1심 결과와 달리 80% 삭감된 결과가 2심에서 나왔으니 침수 피해 주민은 평택시와 법무부에 소송비용 80%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피해 주민은 빚더미에 앉은 꼴이 됐다.

정부는 미군이 콘크리트 벽을 쌓기 전에 그 타당성을 물론, 장단점을 주민과 함께 꼼꼼히 따져봐야 했다. 그리고 지자체와 주민이 참여해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해야 했다. 무엇보다 이 사업으로 직접 피해를 보게 되는 사람들에게 모든 정보를 공개하고 의견을 들어야 했다. 그렇지만 정부와 미군은 공청회 한 번 진행하지 않았고 주민 의견도 무시하며 사업을 강행했다. 그리고 폭우가 쏟아졌고 우려했던 침수가 발생했다. 마을 주민들은 삶터와 일터 모두를 잃게 됐다. 그리고 피해를 보상받기는커녕 도리어 빚더미에 앉게 됐다. 정말이지 국가조차 보호하지 못하는 사건·사고가 있다는 것, 그것으로 폭력과 희생에 노출되는 국민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무엇인가 잘못됐다는 증거다.

장등리 침수 피해 주민에게 소송비용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도의적’인 마음은 평택시장도, 평택시의회 의원도, 행정 공무원도 모두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법적’으로 소송비용을 피해 주민에게 청구해야 한다. 피해 주민을 보호할 수 있는 법령이 없기 때문이다. 평택시는 이번 서탄면 장등리 침수 피해를 거울삼아, 미군기지로 인한 피해에서 주민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법적 근거를 마련해둬야 한다. 또한 안보와 외교 상황으로 미군기지로 인한 구체적 피해 사건들을 협상하는 과정에서 자유롭지 못한 정부를 대신해 SOFA 등 미군 관련 상위 법령을 마련하고, 미군과의 직접 협상을 위한 의견을 적극 개진해 지자체의 권한을 높여야 한다. 그것이 미군기지 사건·사고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길이며, 피해를 줄이는 길이다. 어쩌면 시민을 보호하는 정치란 최대의 선을 베푸는 일이 아니라 최소의 잘못을 범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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