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에 예정된
반환 미군 공여지에 대한
인식을 변화해야 한다

 

   
▲ 이수연 전 부이사장
한국사진작가협회

10년 만에, 하야리아 미군 부대 터를 다시 찾았다. 인디언 어로 ‘아름다운 초원’의 뜻을 가진 하야리아는 일제 강점기이던 1930년에 우리나라 거주 일본인들을 위한 경마장으로 건립한 곳이다. 1941년 태평양 전쟁을 계기로 일본군 기지로 바뀌는 아픈 역사도 거쳤다. 하지만 해방 이후 우리 정부 수립으로 미군이 철수하면서 잠시 끊어졌다가 6.25 전쟁으로 주한미군 부산기지사령부가 들어서면서 다시 이어졌다. 그러다 90년대 들어서면서 도심 균형발전과 시민생활 불편,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 따른 선수촌 건립 등의 이유로 결국은 부산시민에게 돌아왔다.

다시 방문하기까지 10년의 세월은 반환 이후 방치돼 어수선하고 우중충하던 이곳을 부산의 대표적 시민공원으로 바꿔 놓았다. 공원 초입에서 받은 느낌은 ‘잘 헹구어 말쑥하게 포개놓은 절임 배추’였다. 무려 16만 평의 너른 평지공원이다. 평화롭고 감미로웠다. 흠잡을 곳 하나 없다. 조경, 공간배치, 곳곳의 조각품이나 독특한 기능의 조형물은 물론,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시설 그리고 군데군데 시민을 위한 체험 공간 등은 문외한이 보기에도 대도시의 완벽한 공원 그 자체다. 그런데 처음 찾았을 때 보았던 그곳 그 풍경이 아니다. 낡고 바랐어도 잔뜩 가슴에 품은 이야기를 금방이라도 풀어 놓을 듯 가슴 설레게 하던 그것들이 모두 사라졌다. 야생까지는 아니어도 벌레 먹고 우박 맞아 구멍 숭숭 뚫렸지만, 아직 벌어진 이파리들을 볏짚으로 싸매기 전의 힘 빳빳한 그게 아니었다. 일본군과 미군을 거치는 동안 만들어진 특유의 힘을 느낄 수 없었다. 자세히 보면 이곳이 미군들이 사용하던 건물이었고 저 기둥들은 그 옛날부터 써 오던 전봇대이겠거니 할 뿐이었다. 

부산시민공원은 당선작을 내지 못한 국제현상공모 대신 기본 구상안 제안서를 통해서 공원설계를 미국 건축가에게 의뢰했다. 처음 구상은 현재 공원역사관으로 사용하는 장교클럽 건물만 보존하고 나머지는 철거하는 것으로 진행했다. 그러다 전문가들과 시민사회가 건물 보존을 거세게 요구하자 뒤늦게 보존과 철거 대상을 다시 정하기로 설계를 변경했다. 그 결과 338동의 건물 중 23동을 남겼다. 그렇게 하여 공원 완성까지 토지매입비를 포함해 6700억여 원이 들었다.  평택의 알파탄약고를 생각해본다. 2005년부터 시민운동을 벌인 결과 보존에 성공한 이래 우리나라 공간재생의 효시 격으로 평가받는 곳이다. 전체 면적의 절반이 약간 넘는 4만 5000평 정도를 보존하는 것으로 결정했는데 하야리아 터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본디 용도가 다르고 지형이 다르고 위치가 다르다. 공원 조성도 한국토지주택공사의 기부채납 방식이다. 그렇다면 조성 방법의 접근도 달라야 할 터다. 다행히 아직 그 어떤 방식이든 결정하지 않았다. 우리보다 늦게 출발했지만 먼저 완성한 공간재생 사례의 성공과 시행착오 사례를 많이 보고 접목할 시간을 가졌다는 뜻이기도 하고 공원 보존을 추진한 입장에서는 대한민국, 나아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특별한 공간을 만들자는데 충실해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요즘 들어 탄약고 주변에 들어서기 시작한 아파트 입주민들이 ‘위험천만 평택’ ‘탄약고 당장 이전’ 등의 현수막을 게시하는 등 집단 반발 조짐이 생기고 있다. 미군 측이 차일피일 몇 번이나 반환 약속을 어겼기 때문인데 또 이전 약속을 안 지킬 듯한 기미도 보인다. 그런데도 희망적인 것은 종전과 달리 민선 7기에 들어서면서 알파탄약고에 대한 평택시의 인식이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화예술 특화, 활용 극대화를 위한 고민, 조기 반환을 위한 적극 협상 모색, 이에 따른 시 행정부처의 변화 등이다. 이번 부산 하야리아 벤치마킹 역시 하의상달식 건의로 진행됐다는 것 자체가 알파탄약고는 물론 평택에 예정된 반환 미군 공여지 활용에 대한 청신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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